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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11.04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1997)
  2. 2022.10.31 노랜드(2022)
  3. 2022.10.30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
  4. 2022.10.25 피를 마시는 새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1997)

어이없게도 내가 처음으로 에반게리온을 접한 건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EOE)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TV판 에반게리온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서 TV판을 다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고,

당시에 유행하던 말로는 '멘붕물'이었다

그때 친했던 친구가 에반게리온에 심취해 있어서 나에게 무작정 EOE부터 보여줬던게 원흉이다

상당히 충격을 받았지만 사춘기 특유의 허세로, 이쯤이야 뭐 하나도 안 잔인하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도 EOE에서 아스카가 무참하게 공격당하는 모습, 레이가 거대한 모습은 머릿속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온갖 자극적이고 기괴한 것으로 순위를 다투는 컨텐츠가 만연한 요즘에 봐도 충격적인데

97년도에 봤으면 정말 기절초풍했을 것 같다

하여간에 최근에 극장에 가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마지막 편인 다카포를 보고 와서

다시 TV시리즈와 EOE를 보게 되었다

아마 한 4번째 보는 것 같은데, 감상문을 쓰는 건 처음이다

나에게는 우울할 때 보면 뭔가 정신적으로 정화가 되는 애니메이션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비극을 보면서 카타르시스, 즉 감정의 정화를 느꼈다는 것처럼

나도 나보다 훨씬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신지를 보면서 이상하게 정화가 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기분이다

 

1. 연출

사실 내가 에반게리온을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는데는 메시지나 철학보다는 연출이 크다

애초에 철학을 할거면 책을 쓰는 편이 낫지 왜 만화를 만들겠는가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그 매개체의 중요성이 생각보다 참 크다

정말로 중요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라도 말하는 사람이 찐따같으면 그저 찐따소리같이 느껴지는 것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출의 높은 완성도가 많은 오타쿠들이 에반게리온에 깊게 파고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TV판이 방영된 것은 1995년부터 1996년으로, 그야말로 세기말의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기대가 있던 시절이다

겉보기에는 소년만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어딘가 많이 뒤틀려있는 이 만화는

열혈 소년들의 건강한 우정과 용기를 다루는 것 보다는 

사춘기의 불안하고 손대기만 하면 깨질 것 같은 위태로운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그런 심리는 독특한 연출로 나타난다

예산이 부족해서라는 후일담이 있기는 하지만,

정적인 화면에 성우의 목소리만 나오는 특유의 연출은 신지의 깨질 것 같은 예민한 심리를 극대화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비디오아트나 콜라주작품을 연상케하는 씬들도 신지의 불안한 정신을 잘 보여준다

 

TV판 마지막 두 회차는 복습할때마다 참 제정신으로 보기 힘들다

약간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이 만든 것 같은 에피소드 같다

현실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보여주지 않고,

끊임없이 신지의 내면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만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에는 24화까지 보고, 극장판인 EOE로 넘어가는 루트를 택했다

이렇게 하면 얼추 이야기의 아귀가 맞는 느낌이라 이렇게 보는 편을 선호한다

EOE는 말하자면 25화와 26화에서 신지가 '우메데토~'하는 동안

현실세계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주는 내용이다

지금봐도 참 황당한 구성인데 그때 처음 봤던 사람들은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EOE에서는 순조롭게 세상이 망해간다 

서드임팩트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신지가 좋아했던 아스카는 만신창이가 되고 레이는 거대레이가 되고.. 

신지와 함께 시청자의 정신도 탈탈 털리는 내용이다

상징적인 부분이 많아서 매끄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 해석을 보면서 무작정 그걸 내 해석인양 받아들이기도 싫은 탓에

그냥 반쯤 이해하지 못한 채로 늘 보고 있다

하지만 에반게리온의 매력은 또 이해안되는 그 신비함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2. 메시지

신지는 늘 타인에게 상처를 입는다.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자꾸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멀어져간다. 

고통스러운 신지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려고 한다

늘 자신에게 모질게만 구는 아버지, 자신을 거부하는 아스카, 겨우 이해했다고 생각했을 무렵 죽는 레이...

정말 정신이 나가지 않고는 못배길 환경이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배우면서 에반게리온을 떠올렸다

이방인은 처음 읽으면 이게 명작이라고??? 싶어지는 겁나 재미없고 이상한 책이다

그게 술술 이해가 잘되면 이상한 사람이다

애초에 이해가 잘 안되도록 감추는 언어를 사용해서 쓴 책이기 때문이다 

보통 책들은 인물의 행동에 인과관계가 있고 독자가 화자에 몰입할 수 있도록 쓴다

그런데 이방인은 정확히 그 반대를 의도적으로 추구한다

독자가 아무리 읽어도 화자에 대해 결코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달의 뒷면같은 수수께끼의 공간을 남겨놓는 것이다

이는 부조리 철학과 연결된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눈부신 발전을 이루던 인류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설명가능하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전쟁에 휩싸인 세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쟁은 그렇게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성으로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서의 세계

 

타인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표정은 결코 완전히 마음을 전달할 수 없기에

타인의 존재에는 항상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알아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

마음의 벽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늘 상처입는다

에반게리온에서는 이 마음의 벽을 AT필드라고 한다

인류보완계획은 이 마음의 벽을 완전히 녹여 인류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것

더 이상 서로 오해하고 상처입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신지는 상처입더라도 나자신으로 살아보고 싶다면서 

LCL용액화된 인류를 원래대로 복구시킨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의해 쉽게 상처입는 나이로는 사춘기만한 것이 없다

때로는 너무나 자괴감이 들어 이런 상처를 주는 사람들 따위 존재하지 않았으면,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어쩌면 에반게리온은 한 예민한 소년의 성장기에 대한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것에 맞서야 어른이 될 수 있다

회피하지 말고 현실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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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랜드(2022)

 

천선란 작가의 단편집 노랜드를 읽었다

천 개의 파랑이라는 장편을 인상깊게 봤었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 속에서 인간이 어떤 상처를 입을지,

그 상처 속에서 또 어떻게 서로를 치유해나갈지 이야기한다

SF장르지만 과학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점이 참 좋았다

 

'따뜻한 외로움'

소설집을 다 읽고 들었던 나의 감상이다

하얀 설원이 그려진 표지처럼 차갑고 포근하다

차가운 세상에서 서로를 꿋꿋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각 단편들은 대부분 반쯤, 아니면 거의 다 망해버린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아파하지만 또 서로를 지켜주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그러나 마냥 천진하지도 않은 정서가 기분 좋았다

총 열 편의 소설이 실려있는데, 그 중 마음에 들었던 네 개의 이야기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흰 밤과 푸른 달>

인체 강화 시술을 받아 외계 생명체가 침공한 지구를 지켜낸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 그 위험한 신체 능력 때문에 인간들의 불안한 눈초리를 받게 되고,

결국 골칫덩이가 된 그들은 지구를 떠나게 된다

이야기는 시술을 받은 명월을 배웅하러 온 강설의 이야기다

만성적인 외로움을 타는 둘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좀처럼 솔직하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명월은 강설을 지키기 위해 괴물이 되었지만 강설은 변해버린 그녀가 낯설게 느껴지기만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가기 힘든 늑대인간과 인간 연인의 딜레마를 공상 과학의 틀에서 풀어냈다

흰 눈이 오는 가운데 소녀가 소녀였던 늑대를 만나러 간다

명월에게 얼마가 걸리든 언젠가 꼭 돌아오라고 먼 미래의 재회를 약속한다

 

<바키타>

쓰레기를 모조리 먹어치우는 외계 생명체 '바키타'를 사람들은 환경 오염의 완전한 해결책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쓰레기 이외의 것도 먹어치우기 전까지는

지구를 덮고 있던 인간 문명의 흔적은 사라지고 바키타는 환경을 해치지 않는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 살아간다

인간은 바키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원시적인 삶을 사는 형태로 진화한다

냉동되었다가 깨어난 주인공은 원시인이 된 후손들의 삶을 관찰한다

사람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반전시켜 보여주는 이야기다

바키타는 마치 사람이 숲을 벌목하듯 원시인들을 죽이고,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애완인간을 데려간다

인간이 평소에 하는 일을 바키타의 모습을 빌려 보여주었을 뿐인데 소름끼친다

다른 생명들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게 보이겠구나 싶었다

문학적 상상력은 때때로 이렇게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를 다시 보게 한다

 

<제, 재>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질환이지만

창작의 세계에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주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선량한 지킬이 사악한 하이드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이드의 입장이 어떤지 사람들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는 사라져 마땅한 그림자일 뿐이고, 지킬의 몸을 불법적으로 점유한 영적 법법자다

 

이 이야기의 '제'는 천재적인 주 인격 '재'에 딸려사는 처지로

재가 똑똑한 두뇌로 과학계의 이목을 한몸에 받고 있을 때

뒤에 숨어서 살아야하는 껄끄러운 존재다

외출도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절대 하지 못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오직 재의 것이다

부모님조차 불편해하는 제를 유일하게 아끼는 건 동생인 선

냉정한 천재인 재보다 평범하고 다정한 제를 사랑하는 선은

제를 영원히 없애려는 재의 계획을 제에게 알려준다

 

제는 어쩌면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 순리에 맞는 게 아닌지 고민한다

재와 달리 똑똑하지도 재능도 없는 제는 정녕 살아갈 가치가 없는 걸까?

요즘 사회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똑똑한 의대생의 죽음은 비극이고 일하다 죽은 가난한 노동자는 알 바 아니다

목숨에 쉽게 가치를 매기고 능력주의라는 말로 감싼 폭력을 휘두른다

"재가 천재인 것과 네가 사는 건 다른 거야. 재가 천재여서 네가 죽어야 한다는 건 정말 다른 문제야."

"나한테 형제가 있을 거라면 남을 죽인 천재보다 그냥 네가 훨씬 좋아."

"네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이런 사회를 사는 나에게 선의 말이 너무 따뜻하게 와닿았다

목숨의 값을 함부로 매기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선의 말은 제를 향한 것이었지만 마치 사회를 향한 유쾌한 반란 선언처럼 들렸다

 

<이름 없는 몸>

주인공은 잊혀져가는 깊은 산골 마을에 시집 온 외국인 신부의 딸이다 

모두 그곳이 아이가 살 곳은 못된다고 했다 

음침하고 폐쇄적인 그 마을을 주인공의 어머니가 몰래 도망쳐 나오려던 그때,

놀랍게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차마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산모를 떠나지 못하고 그를 돕는다

주인공과 '너', 그리고 어머니들은 그 끔찍한 마을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고 또 버틴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생각난 영화가 하나 있었다

폐쇄적인 시골에서 가족과 이웃에 의해 학대당한 여성이 피의 복수를 하는 내용인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다

책에서도 '너'의 아버지가 가족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마을의 누구도 막지 않는다

오히려 그 폭력에 은근히 동조하기까지 하고, 오히려 아버지를 불쌍히 여긴다

주인공은 죽은 '너'를 자기 손으로 묻고 넓은 세상으로 나갔는데

다시 돌아온 마을에는 '너'가 다시 살아있다 안개 낀 눈을 한 채로

'너'는 마을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었고 마을에 아무도 살아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웃으며 죽음을 맞는다

좀비물이라는 장르를 유독한 가부장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활용한 점이 정말 참신하고 강렬했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과 조금 다른 점은, 김복남은 친구 해원과 결국 연대를 이루지 못했지만

이름 없는 몸의 주인공과 '너'는 폭력적인 환경에서도 서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점이다

힘없고 외로운 여성들의 연대는 언제나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주제다

물론 현실의 여성들이 언제나 연대하는 것은 아니다 

속이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며 꼭 이상적인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문학이 현실의 반영인 만큼 문학을 읽은 사람들이 또 현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민폐끼치다가 남자에게 구해지는 여자' 이야기 대신 여자와 여자가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읽고 자란 사람들이 만들어 나갈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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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

올해 본 가장 이상한 영화

그런데 올해 본 가장 감동적인 영화였다

 

미국으로 이민해 가족과 눈맞출 시간도 없이 바쁘게 세탁소를 운영하는 주인공 에블린(양자경)은

세무서에서 면담을 하는 날 갑자기 다중우주의 존재를 알게된다

다른 세계의 남편이 현 세계의 남편에게 접속해서 말을 걸어 온 것..!

소멸 위기에 처한 우주를 지킬 운명이 평범한 아시아 이민자인 에블린에게 있다고 한다!

평범했던 주인공이 구원자로 선택받고 각성하는 이야기는 어디서 백번쯤 본 것 같지만

그 주인공을 아시아계 중년 여성으로 바꾸고, 도라이같은 b급감성을 듬뿍 퍼준다음,

그걸 또 양자경의 고급스러운 연기로 한번 버무려주고,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버금가는 환각적인 연출로 마무리하면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독창적인 영화가 탄생한다

 

b급 같지만 보다보면 메시지가 따뜻한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한다

나같은 취향의 사람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 세트 같은 영화

뜬금없이 난무하는 숭한 드립들이 너무 웃겼음 ㅋㅋㅋㅋㅋ

성적인 드립이 있긴 하지만 더러운 섹드립이라기보단 '으엑ㅋㅋㅋ'하는 숭한 느낌이라 마음 편하게 터졌다

트로피가 좀 거시기하게 생겨서 신경쓰였는데... 예... 진짜로 그렇게 쓰인다

중간에 엉덩이 맞는 사람도 감독이라고 들었다 감독 이상한 사람이 확실한듯

아무튼 그게 사실 핵심은 아니고, 그런 숭함이 있는 가운데 이야기가 참 따뜻하고 재밌었다

 

에블린은 멀티버스 접속에 성공해서 다른 우주에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을 보게된다

그 에블린들도 그 우주에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각 에피소드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조부 투파키는 모든 세계의 자신들과 연결된 후, 각각의 삶이 무의미하는 결론을 내리고

아무 의미도 없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에블린은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도 삶을 긍정한다

불교는 쥐뿔도 모르지만 이런게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라는 걸까

 

이런 이야기 구조에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떠올랐다

각각 다른 시대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것이 묘하게 맞물려서 하나의 메시지를 만든다

사실 영상화하기에 썩 적당한 소재는 아니라 호불호가 꽤 갈리는 영화였는데 나는 좋아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

두 영화 모두 이런 메시지를 가진 것 같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각 시대의 주인공들은 꿈꾸던 일에 기적적으로 성공하기도, 비참하게 실패하기도 한다

벤 위쇼가 연기하는 천재 작곡가는 사랑하는 연인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재능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곡 하나만을 남기고 자살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비극적인 끝만은 아니다

죽은 작곡가의 음악은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그는 다시 태어나 전생의 자신의 음악에 묘한 향수를 느낀다

 

설사 이번 생에 실패하고 고통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이 영화에서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처럼 다른 삶을 사는 자신들이 있다

영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머릿속으로 정리하지는 못하겠지만

뭔가...뭔가 아무튼 그런 따뜻함과 아련함이 있음

이 삶이 조금 실패했다고 모든것이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기분이 든다

 

 

 

 

 

피를 마시는 새

8권짜리 소설의 후기를 쓰려니까 골치가 아프다

등장인물도 많고 이야기도 길고 메시지도 많고

무엇보다 초반에 읽었던 부분은 기억도 잘 안난다는게 문제다

그래서 그냥 대강 마음에 들었던 포인트만 정리하려고 함

 

1. 주제의식

인간의 자유의지와 행복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대충 이런 주제였던 것 같다 

황제 라세는 사람이 죽고 죽이는 것을 그만두도록 하기 위해

1만 6천년동안 사람의 운명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두고 다투는 다양한 관계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마지막에 인물들은 황제가 사람에게 앗아가려고 하는 죄를 되찾는다는 결정을 한다

죄를 되찾는다니 조금 이상한 소리 같지만

물이 끓고 어는 것에 도덕을 따질 수 없듯이, 죄가 없으면 도덕도 없어진다는(?) 이야기 같다

죄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해준다는 것

주제의식이 작품에서 상당히 비중있게 언급되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쉽고 선명하게 나타나있지는 않아서 무슨 소리인지 계속 고민하면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치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함이 책의 매력 같았다

 

2. 여성캐릭터

이 책이 매력적이었던 이유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좋은 여성캐릭터들

전작인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는 아예 성별이 반전된 나가 사회를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나가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중요하게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수는 더 많고 다채롭다

주인공 격인 엘시와 대적하는 장군 베로시 토프탈은 굳이 여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성별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이 쓰여졌다

두억시니에 대한 학문적인 호기심이 강하고, 야망있으며 전술적으로 뛰어난 장군이다

또 니어엘 헨로는 툭하면 주정뱅이가 되지만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진 활 기술을 가졌고

천재적인 작전 수행 솜씨를 가진 사람이다

책에서 가장 정이 많이 갔던 캐릭터다 짠한 가족사까지 있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임 ㅠ

암살공의 사생아로 등장하는 헤어릿은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떠날 수 없는 묘한 처지의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도깨비감투를 가지고 더는 이용당하지 않고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려한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낮은 신분의 소녀를 지키겠다 맹세하는 이이타를 보고

그를 돕겠다고 스스로의 결정을 내린다

배다른 형제인 스카리 빌파가 도깨비감투를 가지고 망나니짓만 하고 다니는 것과 대조적이다

비나간의 왕으로 스스로를 추대한 지키멜 퍼스도 중반부 부터 상당히 비중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치밀한 음모로 할아버지를 끌어내리고 스스로 왕이 된 손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도덕이고 목숨이고 뭐든 이용하는 추진력이 대단하다

특히 후반부에 납치극 벌이는 장면이 인상적... 완전 도라이같은 인물이다

 

3. 세계관

탄탄한 세계관이란 표현이 진부하지만 그보다 어울리는 말이 없다

탄탄하다 못해 단단해서 어딘가 실존할 것 같은 세계관이다

암살성이 있는 도둑들의 고장인 발케네, 무사들의 고장인 무향 규리하

제국 전역으로 세력을 넓힌 유료도료당과 그에 경쟁하는 자유무역당

단순한 선악구도가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개성과 신념을 가진 세력들이

서로 반목하고 협력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동양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가 분명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세부터 이미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각 지방을 쥐고있는 권력자가 각각 따로 있는 아라짓 제국과는 성격이 다르게 느껴졌다

 

하늘치라는 소재를 허투루 쓰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든다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을 보면 꼭 거대한 하늘을 나는 동물을 넣어놓고 멋있는척하다가

결국 그냥 간지나는 배경 아니면 생긴 것만 멋진 전용기정도의 역할만 부여한다

껍데기만 조금 바꿔놓고 판타지라고 우기는 이런 작태를 매우 싫어하는 편인데

이 책에서는 하늘치의 역할을 깊이 생각하다 못해 끝없이 파고 들어간 것 같았다

사람이 올라갈 수 있으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생물이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그렇다면 '제국의 수도를 그곳에 건설하여 고정된 중앙없는 제국을 건설한다'라고 대답을 내놓는다

판타지라는 장르는 뭐든 마음대로 상상해서 쓸  수 있으니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은 장르보다 구축하기 어렵다. 

세계를 이루는 법칙을 대강 만들면 이야기는 붕 떠보이고 설득력이 없다

소재 하나하나를 선택할 때 그 소재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 깊게 고민한 흔적이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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