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2021)

1. 음식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며칠 전 잠들기 직전 11시 즈음이었다.

표지와 목차를 넘기자마자 페이지 가득한 음식에 대한 묘사가 나를 허기지게 했다.

매콤하고 야채가 가득 들어간 짬뽕이며 달콤 짭쪼름하고 부드러운 갈비를 미친듯이 갈망하게 됐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식을 싫어하지도 않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아왔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달걀을 요리해 먹거나 빵을 구워 먹는 편을 선호한다.

외식 메뉴를 고를 때도 한실을 따로 찾아먹지는 않는다.

그랬던 내가 한밤중에 고슬고슬하고 따뜻한 흰쌀밥을 떠올리고 있었다.

결국 배가 고파져서 야식을 참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책을 덮어야만 했다.

다음날 다시 책을 폈을 때도 미셸의 한식 묘사는 계속 내 입맛을 돌게 했다.

내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인지 미식 칼럼을 읽는 것인지 계속해서 헷갈렸지만,

읽다보니 그 두가지가 결국 같은 것을 말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미셸에게 음식은 이제는 없는 어머니와 연결되어있음을 상기시킬 수 있는 대상이자,

상실의 슬픔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또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때 자신의 뿌리를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2. 보고싶은 외할머니

미셸과 어머니의 이야기는 모든 문화권에서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것이지만,

특히나 어머니를 가진 한국의 모든 딸들에게는 더욱 와닿을 것 같다.

엄마를 미워하고 부끄러워 하면서 또 사랑하는 복잡미묘한 감정.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많이 떠올랐다.

 

이 책은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홍차와 마들렌처럼 나를 순식간에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젖게 했다.

그 추억은 큰외삼촌이 멋대로 쓴 추도사의 '자애로운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외할머니는 제멋대로의 독불장군이었지만, 다른 가족들이 내리기 어려워하는 결정을 혼자 턱턱 잘 내렸다.

다른 가족들이 그 결정에 항상 만족했느냐고 물어보면 그 대답은 반드시 긍정은 아닐 것이지만 말이다.

 

외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2월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그때 우리 엄마는 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운 사람이었다.

늘 제멋대로에 과대망상적인 걱정을 하는 외할머니에 대해 불평을 하던 엄마가 그렇게까지 슬퍼할 줄은 몰랐다.

외할머니는 특유의 전라북도 억양으로 맘에 들지 않는 물건을 "내쏴"버리라고 자주 말했다.

또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거시기" 좀 가져와보라고 했는데, 엄마는 항상 외할머니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찾아왔다.

외할머니는 미셸의 어머니처럼 냉혹한 비판으로 내 맘을 자주 상하게 했다.

특히나 예민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외할머니가 "너 살 좀 빼야 쓰겄다."라고 한 말에 꽤 오랫동안 앙심을 품고 있었다.

내가 어리광을 부리거나 고집을 쓰면, 너그럽게 달래주던 다른 어른들과 달리 외할머니는 "너 그러면 안돼야."라고 하면서 어린 내가 울든지 말든지 웃음을 터트렸다.

 

미셸이 어머니에게 가지고 있는 그리움이 꼭 내가 외할머니에게 가진 것과 같게 느껴졌다.

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모두가 그를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천사같은 여사님으로 묘사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그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올바른 추모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욕심 많고 강단 있으며, 상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인 애정을 퍼부었던 외할머니로 기억하고 싶었다.

미셸이 어머니의 묘비에 loving 대신 lovely라는 말이 적히기를 바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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