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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4 시지프 신화(1942)
- 2023.04.04 살인자의 건강법(1992)
- 2023.03.27 목요일 살인 클럽(2020)
- 2023.03.21 팬텀스레드(2017)
- 시지프 신화(1942)
- 독서록
- 2023. 4. 24. 14:44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어보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이 났다
도무지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글은 왜 이 책이 이렇게 이해하기 어렵나에 관한 글이 될 것 같다
작품이 쓰인 시대 배경은 2차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으로, 이 때 서구의 가치관은 큰 변화를 겪는다
중세부터 서구를 지배해온 이념은 삶의 목표=신 이라는 거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근대적인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등장한다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과학의 가호 아래 인류는 세상 모든 이치를 이해하고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가득차있다
통념과 달리 이 당시 종교와 과학은 지금처럼 서로를 부정하는 관계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과학은 자연에 담겨있는 신의 섭리를 밝혀내는 학문으로서, 종교와 친밀한 사이였다
종교와 과학이 상부상조하며 인간이 세상만물을 다 밝혀낼 수 있다는 희망과 오만에 차있을 무렵 세계 대전이 터진다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인간들의 세계관이 붕괴된다
참혹한 전쟁 속에 신의 섭리는 보이지 않았고 세상은 다시금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되돌아갔다
시지프 신화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로 하는 책이다
그러니까 신의 부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신의 부존재 이후에 인간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책이다
책 자체가 논리적, 이성적으로 설득한다기 보다는 느끼라는 감성이다
끊임없이 비유를 통해서 부조리의 감성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원래 신을 삶의 목표로 살다가 순간 신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이제 어떻게 살지? 하는 사람한테 와닿을만한 책이라는 거다
태어나기를 무신론자로 태어난 나한테 신이 없다면 삶의 의미를 이런 곳에서 찾아라! 해봤자 어쩌라고 싶은거임
삶의 의미 원래 없었고 없어도 잘만 사는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싶음
신들의 형벌을 받은 시지프가 항상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고 찰나의 기쁨과 어쩌구를 느낀다는게 책의 요지인데
그렇게까지 의미를 찾으라고? 싶은 거임.
책 자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 문화권과 그렇지 않은 문화권에서 받아들여지는 중요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유효한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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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자의 건강법(1992)
- 독서록
- 2023. 4. 4. 15:43
아멜리 노통의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었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대담하고 긴장감 넘치는 작품이었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괴팍하기로 유명한 한 작가가 희귀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극 소수의 기자들에게 인터뷰를 허락한다
이 작가는 인간혐오자로 유명하며 논쟁으로 상대를 너덜너덜하게 녹다운시키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다
심각한 비만에 잘 씻지 않아서 역겨운 냄새가 나고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 대해 성희롱을 일삼는 그야말로 혐오스러운 인간.
묘사만으로도 혐오스러운 이 작가를 인터뷰하는데 남기자들 여럿이 줄줄이 실패하는데,
이들은 작가의 헛소리에 무엇인가 의미가 있다고 믿으며 이를 캐내려다가 결국 작가 페이스에 끌려다니며 인터뷰를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인터뷰를 이미 마친 기자들이 입을 모아 이 작가는 끔찍하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아직 인터뷰를 하지 않은 기자들은 자신이라면 위대한 작가와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그리고 또 실패함)
유일하게 인터뷰다운 인터뷰를 하는데 성공하는 여기자 니나.
여성혐오자이기도 한 작가는 어떻게 여자가 자신을 인터뷰할 수 있느냐고 길길이 날뛰지만, 이미 작가의 본성을 간파한 니나는 작가에게 말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대담을 이끌어간다
거의 모든 장면이 대화체로 이어지는데, 서로 한마디를 안진다
그런 치열한 대담 속에서 작가의 과거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그런 내용
작가의 비밀은 그의 미완성 작품 <살인자의 건강법>에 숨어있다
작가의 유년시절 그는 사촌누이와 사랑에 빠져,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기로 맹세했다
둘은 2차 성징이 오지 않도록 극도로 적게 먹어서 성장을 늦추고, 하루 종일 물 속에 잠겨서 수영만 한다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한 둘만의 '건강법'이다
작가에 따르면 그들은 2차 성징이 시작되는 것을 배신이라고 보고, 배신한 사람을 다른 한 사람이 죽이기로 했다
물론 누이도 정말 그 발상에 동의했는지는 알 수 없음을 니나는 지적한다
둘 만의 기묘한 건강법을 실천하며 지내던 17살의 어느 날, 사촌누이의 초경이 시작됐다
작가는 그 즉시 사촌누이를 살해한다
듣기만 해도 역해지는 기괴한 이야기에 작가는 의미부여를 하며 영원이라는둥 진정한 사랑이라는둥 말을 하는데,
어쩐지 이 광경은 내로라하는 기성작가들의 소설이 떠오르게 한다
죄와 벌, 이방인, 적과 흑... 죄다 백인 남자가 약자를 살해(혹은 살인미수)하고 살인에 온갖 의미부여하는 내용 아닌가
문학적 완성도나 작품의 철학적 메시지를 떠나서, 솔직히 읽을 때마다 어쩌라고 싶었음
따지고 보면 이방인에서 제일 불쌍한 건 난데없이 총맞아 죽은 아랍인이지 감옥가서 징징대는 뫼르소가 아니다
책은 니나의 입을 빌려 작가의 끊임없는 의미부여 시도를 차단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문학을 통해 약자혐오를 일삼아놓고 갖은 의미부여를 하면서 정당화하고 예술로 찬양받는 수많은 작가들 귓싸대기를 팍 때리는 느낌이랄까
어릴 적 유명한 문학들을 읽으면서 이 집착적인 섹스타령과 가슴타령에는 대체 무슨 깊은 어른스러운 의미가 숨어있는 걸까 고민을 했었다
다 크고나서야 깨달았는데 거기에는 그냥 아무 의미도 없었다 작가들의 불필요한 성욕 전시일 뿐이었음
작품 초반에 작가와의 난해한 인터뷰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남기자들의 시도는 끊임없이 실패로 끝나는데, 마치 어릴 적 책을 읽으면서 고민하던 나의 모습 같았다
니나라는 캐릭터는 헛소리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애써 해석해주는 권위주의에 찌든 문학계를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책에서 가장 통쾌했던 장면은 마지막 즈음에 나온다
작가는 자신의 모든 과거를 꿰고 있는 니나가 자신과 어떤 혈연관계가 있어 복수를 하러 온 것이라 짐작한다
나 또한 읽으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그런데 알고보니 니나는 정말 작가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고 그냥 작가 엿먹이러 온거다
자신이 처한 위기에 서사를 부여해서 낭만화하려는 첫번째 시도가 실패하자, 작가는 갑자기 니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상황에 서사를 부여하려는 두번째 시도였다
"제가 선생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게 밝혀지자 낙담하시더니, 이제는 억지로 관계를 만들어내려 하시네요. 다급하게 사랑 이야기를 지어내려 하신다고요. 선생님께선 무의미한 것을 열렬히 증오하는 분이셔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만 있다면 어떤 거짓말도 불사하실 겁니다."
문학에서는 등장하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1장에 총이 등장하면 3장에서는 발사되어야한다는 격언처럼, 의미없이 등장하는 요소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그냥 이유없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사실을 깨우쳐주자 작가는 정말인지 견딜 수 없어 하는데, 어차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작가에게는 최고의 복수이다
문학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참신한 발상이 근사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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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 살인 클럽(2020)
- 독서록
- 2023. 3. 27. 14:32
리처드 오스먼의 목요일 살인 클럽을 읽었다
영국의 한적한 실버타운에서 왕년에 한가닥씩 하던 노인들이 취미삼아 추리 동아리를 한다
근데 이 평화로운 동네에서 진짜 살인사건이 발생해서 이들이 해결에 나서는 내용
살인이 나오지만 전반적으로 느긋하고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가장 주인공에 가까운 사람을 꼽으라면 대장격인 엘리자베스인데, 그 외에도 여러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짧은 호흡으로 챕터가 전개된다
심할 때는 한 챕터가 2페이지로 끝날 때도 있다!
여러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사건을 재구성해서, 챕터 짧다고 정신 놓고 읽다가는 무슨 소린지 놓치기 십상이다
화자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어? 얘가 왜 국적이 바뀌었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됨
추리물의 현란한 트릭이라든가, 스릴러의 긴장감이 있지는 않지만 영국 특유의 신랄한 유머와 한국 독자로서는 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빼곡한 인용이 재밌다
뭔가 책이 수다쟁이같다 몰입감이 높지는 않은데 하고있는 말 듣고있자니 꽤 재밌다
여성 노인과 젊은 흑인 여성을 주연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이 상당히 트렌디함
역시 할 게 없을 때는 주인공을 소수자로 바꾸면 확 신선해진다
엄청 명작이다 그런 건 아닌데 전체적으로 불쾌한 느낌 없이 깔끔하고 휴가 때 가볍게 읽기 좋은 그런 느낌
오락소설은 다 좀 이렇게 내면 좋겠다 새롭지도 않으면서 재밌지도 않은 빻소설 그만 좀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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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텀스레드(2017)
- 영화록
- 2023. 3. 21. 15:49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스레드를 봤다
주로 PTA라고 불리는 이 감독은 괴랄하지만 취향에 맞는 사람은 또 엄청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걸로 유명하다
예전에 궁금해서 펀치 드렁크 러브라는 영화를 봤는데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를 내용이라 당황스러웠다
이번이 PTA의 영화 두번째 시도인데 팬텀스레드는 펀치 드렁크 러브보다는 '비교적' 대중적인 스타일 같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대중적이란 거지 절대 모두에게 먹힐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팬텀스레드는 소위 교양 변태(ex: 박찬욱)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꽤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음
남주인공 레이놀즈 우드콕은 런던에서 잘나가는 의상실을 가지고 있는 미중년(노년?) 디자이너로, 젊은 여자를 주기적으로 갈아치우며 독신으로 산다
그러다가 전 여자에 질려서 새로운 애인을 꼬시는데 이 사람이 여주인공인 알마 엘슨.
수줍으면서도 강단있는 성격인 알마 역시 레이놀즈가 마음에 드는지 순순히 따라온다
처음엔 세상을 다 줄 것처럼 굴던 레이놀즈는 제 버릇 못버리고 알마에게 또 지랄을 떨기 시작하는데
나가 떨어져버리던 다른 여자들과 달리 알마는 레이놀즈보다 더한 인간이다
알마한테 지랄떨면서 상처주는 말을 하면 알마는 조용히 뒷산에 가서 독버섯을 캐서 레이놀즈한테 몰래 먹인다
그럼 레이놀즈는 죽다가 살아나서 알마한테 아기처럼 의존하는데, 알마는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하는 무력한 상태의 레이놀즈가 무척 마음에 드는 듯하다
더 어이없는 것은 레이놀즈도 이 관계를 좋아한다는 것
그냥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영화상에서 레이놀즈는 진짜 마조히스트가 맞음
장난이 아니라 정말 변태들의 사랑이고.. 보다보면 아름답다기보다는 이 미친놈년들이 어디까지하나보자 이런 시각으로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막판까지 가면 둘의 변태스러움에 완전히 질려버림
레이놀즈는 정해진 일상의 루틴을 절대 벗어나면 안되는 사람이다
애인이 깜짝 이벤트를 해주는 것에 마저 극도의 혐오감을 나타내는 놈이다
예술가다운 지랄맞은 예민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달달 볶아대는데 그걸 받아주는 사람만 결국 곁에 남는 인생을 아주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런데 알마는 설설 기면서 레이놀즈 눈치를 보아 왔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맘에 안들면 그냥 맘에 안든다고 하는 사람이다
평온한 레이놀즈의 삶에 닥쳐온 거대한 해일같은 존재인거다
알마의 레이놀즈를 향한 사랑은 광기가 느껴질 정도로 맹목적인 것인데, 그 안에 맹목적인 순종은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다
맹목적이지만 애인이 맘에 안드는 짓을 하면 들이받아버리는 저돌적인 성향
다른 영화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여성 캐릭터라서 재밌었다
근데 레이놀즈는 또 막상 알마가 이런 짓을 해주니까 생각보다 취향임
다른 사람 만나지 말고 서로 영원히 사랑해야 하는 위험한 커플이다...
흥미로운건 이 염병스러운 새디스트와 마조히스트의 사랑이 너무나 섬세하고 정교한 미쟝센과 음악으로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있단 것이다
추잡스러운 내용과 아름다운 껍데기에서 오는 괴리감이 재미있다
우드콕의 테마 멜로디가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데 우드콕 특유의 질서정연한 세계를 잘 표현한 것 같다
알마가 입고 나오는 레이놀즈의 드레스들도 정말 아름다움
레이놀즈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유행이나 변화를 혐오한다
일상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한 우드콕다운 디자인을 하는 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런 모든 요소가 인물들의 개성을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영화가 너무 변태스러워서 명작, 세기의 아름다운 사랑! 이런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는 않고
우아한 손길로 만들어낸 그들만의 염병 정도로 정의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로맨틱 코미디가 따로 없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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