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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7 드라큘라(1992)
- 2022.11.23 모브 사이코 100 2기(2019)
- 2022.11.16 모브 사이코 100 1기(2016)
- 2022.11.04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1997)
- 드라큘라(1992)
- 영화록
- 2022. 11. 27. 00:18
주말에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티비를 켰다
EBS에서 <드라큘라>라는 영화를 한다
생각없이 틀어놨는데 흥미를 끌었던 점이
뭔가 화면은 한 1970년대 마냥 올드한 느낌인데
또 배우들 얼굴은 상당히 요즘 미남, 미녀상에 가까운 것이다
연출도 뭔가 현대적이고 그래서 이게 대체 몇년 영환가 궁금해짐
검색해보니 1992년 영화였다
제목이 드라큘라라서 엄청 올드한 공포영화일 줄 알았는데
엥 보다보니 이거 로판임...
런던으로 신문물 구경하러 나온 뱀파이어 왕자가 런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귀족 아가씨한테 한눈에 반한다
실수를 가장해서 접근하는 남자(게리 올드만)에게 여자(위노나 라이더)는 차갑게 대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예의바른 남자의 태도에 어딘가 이끌려 그를 붙잡는다
당차고 다정한 성격의 미나는 신비로운 매력의 드라큘라의 정체도 모른채 빠르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미나는 사실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고... 드라큘라에게 편지로 이별을 고한다
핏빛 눈물을 편지위에 흘리는 드라큘라, 그리고 헤어질 결심을 했지만 약혼자보다 드라큘라에게 더 끌리는 미나
두 사람의 사랑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을 무렵, 런던을 정체 불명의 공포가 휩쓸고 있다
미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루시는 무엇인가에 물려 온전치 못한 상태가 되어간다
결국 목숨을 잃은 루시
그러나 흡혈귀에 물린 루시는 기괴한 상태로 부활하게 됨
아니 근데 루시 의상이 진짜 환장하게 예뻐서 감동했다
유럽 복식 덕후들은 필수 관람인 영화가 아닐까 싶다
하여튼 구마 의식보다는 비주얼에 더 눈이 갔지만 반 헬싱 박사(무려 안소니 홉킨스임)는
루시를 잠재우는데 일단 성공함
얼굴에 정신을 빼앗겨서 사실 내용을 자세히 보지 않음;
우리의 뱀파이어 왕자는 미나한테 찾아가서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다
미나는 루시를 죽게한 드라큘라를 원망하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열망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면 그대에게 영원한 삶을 주리다
사랑의 맹세로 영원한 삶을 주는 뱀파이어식 고백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드라큘라는 너무나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원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과 같은 고통의 세월을 살아가도록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공격을 당해 힘이 약해진 드라큘라는 힘을 회복하기 위해 그의 근원지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를 쫓아 반 헬싱 박사와 미나, 그녀의 남편인 조너선도 뒤따른다
미나는 드라큘라에게 물린 이후로 정신적으로 드라큘라와 연결되고 그와 가까워질수록 이상해진다
드라큘라 성 생긴게 압도적이다 기괴하고 회화스럽게 생긴게 참 멋있음
원래대로라면 사람을 해치는 드라큘라가 죽기를 바래야겠지만
이상하게 드라큘라를 응원하게 되는 영화
이런 내러티브에 담긴 비화와 뭔가..뭔가가 있겠지만 별생각없이 로판으로 봤다
아니 근데 키아누 리브스가 더 미남이긴 한데 게리 올드만이 연기하는 뱀파이어가 너무 매혹적이다
미스터리한 미남부터 영겁의 세월을 살아와 괴물같아진 모습까지 다 소화하는데
뱀파이어의 어둡고 음침한 매력을 특유의 연기로 극대화시킨다
우리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해요
드라큘라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클래식이란 이런거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영화
괴물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의 원본으로서
여러가지 기발하고 세련된 새로운 작품에 영향을 주었겠지만
원조만이 줄 수 있는 강렬함이 있는 영화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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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브 사이코 100 2기(2019)
- 영화록
- 2022. 11. 23. 15:51
모브 사이코 2기는 1기에 비해 조금 무거운 분위기다
1기가 모브의 우당탕탕 성장일기였다면
2기에서는 모브가 좀 더 아픈 시련을 겪게 된다
1. 모가미 케이지
모가미 케이지라는 최강의 악령과 싸우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여기서 시게오는 초능력도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도 없이 홀로 괴롭힘을 당하며 몇개월을 버틴다
외롭고 삭막한 가상의 삶에서도 시게오는 특유의 순한 천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악령 모가미 케이지는 시게오를 계속해서 괴롭혀서 자신처럼 타락하게 만드려고 한다
사람을 가장 나쁜 상태에 몰아넣고 "봐봐 그게 너의 본성이야 거부하지마"라고 말하는 것이다
참 치사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주변 환경이 좋으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모두가 자신을 공격하는 환경이라면 자신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시게오가 몇 개월간 지내게 되는 가상의 환경은 온통 흑백으로 음울하게 연출되는데
너무 끔찍하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지켜보기 힘든 에피소드였다
결국 모가미 케이지는 시게오를 몰아붙여서 흑화 직전까지 몰고가는데 성공한다
모가미 케이지가 가장 지독한 악령인 이유는 그 힘이 강력하기도 하지만
다른 악령보다 더 교묘하게 머리를 써서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인 것 같다
다행히 흑화 직전에 에쿠보의 도움으로 기억을 되찾고 멘탈을 회복하게 된다
모가미는 어떤 면에서 잘못 자란 모브같은 존재다
모가미가 시게오에게 겪게 한 시련들은 본인이 생전에 겪었던 것을 비슷하게 재현한 것인 듯하다
원래는 정의로운 영능력자였지만,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했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용당한 나머지 자신이 공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처절한 방어기제가 생긴 모양이다
끔찍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악역이었다
2. 레이겐의 정체
2기 중반에는 방송에 나가 인지도를 높여보려던 레이겐이 그만 함정에 빠져
모두에게 사기꾼 영능력자라고 비난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시게오는 레이겐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해서
평범한 중학생 소년처럼 친구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혼자 남겨진 레이겐은 인터넷, 잡지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비난받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기자회견을 결심한다
항상 뺀질한 말투로 여유로움을 과시하는 레이겐이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빠져나갈 구멍없는 궁지에 몰린 것이다
바로 그때 기자회견장의 카메라와 마이크가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모두가 경악하는 그 장면이 TV로 생중계되고, 레이겐은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다
당연하지만 아무 능력도 없는 레이겐이 아니라 시게오가 한 일이었다
부끄러워하면서 시게오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았냐고 물어보는 레이겐
하지만 시게오는 그런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시게오가 레이겐을 처음 찾아 갔을 때 그가 해주었던 말을 되돌려준다
"좋은 녀석이 되어라"
"좋은 녀석이에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이 장면 너무 심하게 감동적이다
처음부터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던 시게오였다
그냥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고 굳은 신념으로 이끌어주는 그가 좋았을 뿐이다
어찌보면 이 만화에서는 사람들이 혹할만한 화려한 겉모습을 초능력에 비유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화려한 겉모습에 누구나 이끌리지만, 사실 정말 중요한 건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이라는
하도 많이 말해져서 진부하게 들리기 쉬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다
1기에서 진정한 어른으로서 시게오를 이끌어주는 레이겐의 모습이 나왔다면
2기에서는 흘러가는대로 아무렇게나 살던 레이겐을 붙잡아준 시게오의 모습이 나온다
서로에게 구원받으면서 구원해주는 이야기는 왜 이렇게 보기만 해도 좋은 걸까...
이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레이겐이 시게오를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는 관계에서
서로에게 용기가 되는 관계로 한단계 성장해나간다는 인상이 있다
3. 손톱
마지막으로, 지난 1기에서 떡밥을 잔뜩 뿌렸던 손톱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와 대립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 마라톤을 뛰(다가 기절하)고 돌아간 집은 활활 타고 있었고 부모님과 동생의 생사는 알 수 없어졌다
감정 폭주 상태가 될 뻔한 시게오를 겨우 에쿠보가 말리고,
손톱이 장악해버린 도시를 구하기 위해 레이겐을 비롯한 초능력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
손톱이란 단체의 보스는 스즈키 토이치로라는 강력한 초능력자로
자신이 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뭐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스펙터클은 가장 컸지만 개인적으로 재미나 메시지는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조금 적었다
보스라는 사람이 말이야... 중학생 상대로 진심으로 싸우기나 하고!
오히려 아들은 흑막일것처럼 나오다가, 미친 아버지를 말리는 철든 아들로 나온다
건강한 정신의 참어른이 많이 나오는 이 만화에서 보기 드문 못난 어른이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현실에는 그런 어른들이 세계의 지도자로 많이 있으니까
현실 반영인가 싶기도 하다
자신의 최고의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세계의 중심은 자기여야 한다는 푸틴스러운 생각을 하는 어른과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중학생의 대화가 계속 된다
결국 시게오는 그가 힘을 쫓느라 잡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을 상기시키며 그를 패배시킨다
솔직히 보스는 능력도 좀 노잼이고 사상도 노잼이라 그냥 흠.... 하면서 봤다
오히려 스즈키 토이치로의 부하 중 하나인 세리자와라는 캐릭터가 재미있었다
그는 강력한 초능력자이지만 그를 받아들여주지 않는 사회에 상처입고
히키코모리로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발굴해서 재능을 펼치게 해준 것은 스즈키였다
우산은 스즈키가 세리자와에게 준 선물이자, 그를 바깥의 상처로부터 지킬 안전장치이다
세리자와는 남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순한 성격이지만 스즈키를 자신의 구원자라 여기며
그의 명령은 무엇이든 수행하려고 든다
하지만 세리자와는 스즈키가 자신에게 의존하게 하여 이용할 뿐
진정으로 아끼는 것이 아님을 시게오와의 대화를 통해 결국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그를 세상 밖으로 처음 꺼내준 스즈키에 대한 고마움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는 인물
앞에서 언급했던 모가미처럼 시게오가 만약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없이 외롭게 컸다면
저렇게 될 수 있었을것 같다
세리자와는 이후 레이겐의 영능력 사무소의 신입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어리숙하지만 열정넘치고 순박한 아저씨다
늦게라도 초능력자 전담 오은영선생님인 레이겐을 만나서 다행이다
4. 온천여행
2기와 3기 사이에 나온 스페셜 에피소드 <영 기타 등등 상담소 포상휴가>
영능력 사무소가 이보가미 온천으로 사건 해결 출장 겸 휴가를 떠나는 내용을 그린다
다 함께 기차를 타고 온천이 있는 지역으로 향하는 도중,
세리자와와 레이겐은 깜빡 잠들어서 이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목각인형마냥 뚝딱대는 신입 세리자와는 나가는 방법을 알지만
상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말을 하지 않아서
모두 즐거운 온천 여행을 즐기는 와중에 레이겐만 이세계에서 생고생을 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생긴다
큰 내용은 없지만 귀여운 초능력 중딩들이 힐링하는 모습이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겨우 제자의 도움으로 이세계 문제를 해결하고, 온천을 즐기게 된 레이겐
어쩐지 아이들보다 더 들뜬 모습이다
역시 자기전에는 베개싸움을 해야한다며 신이 나서 말을 꺼내보지만
아이들은 유치하다며 모두 거절하고 시무룩한 얼굴로 잠을 청해본다
레이겐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작은 떡밥이 아닌가 싶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지금까지 슬쩍슬쩍 나온 떡밥을 보면 과거가 순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페셜 에피소드답게 소소하고 힐링되는게 참 좋았다
3기 완결을 기다리며 이만 글을 줄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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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브 사이코 100 1기(2016)
- 영화록
- 2022. 11. 16. 15:07
귀여운 모브와 사기꾼이지만 괜찮은 어른인 레이겐이 나오는 초능력물 겸 퇴마 만화
전통적인 소년만화가 평범했던 주인공이 '외적인 힘'을 성장시키며 각성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모브 사이코는 이미 외적인 힘은 최강인 주인공이 내면의 성장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다른 소년만화에서도 내면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보통 장르에 맞는 특수한 종류의 깨달음이 주를 이룬다
'모두를 지켜내겠어!', '친구들을 지킬거야!'
반대로 이 만화는 일상세계의 상식과 상통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아이들은 힘들 때는 어른에게 맡기고 도망가도 된다'라든가
'센 힘을 가지고 있다고 남을 괴롭히면 안돼'라든가
건강하고 상식적인 메시지를 갖고있는 점이 참 매력적인데
만화를 많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 지루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기존 소년만화 공식을 비튼 메시지가 유쾌하고 인상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소위 만화 좀 본 사람들, 기존 장르의 공식을 꿰고 있는 사람들이 봐야 재밌다
공식대로 흘러가는가 싶더니 뒤통수를 탁 때리는 지점들이 포인트다
시게오(=모브)는 조금 소심하고 존재감이 부족하지만
어디 꼬인데 없이 순하게 잘 큰 평범한 중학생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시게오가 평범하게 잘 큰 이유는 곁에 레이겐이라는 스승이 있기 때문
스승이라지만 사실 아무런 능력도 쓸 줄 모르는 사기꾼 영능력자다
어릴 적 감정의 폭발로 힘을 조절하지 못해 동생을 다치게한 모브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레이겐의 사무실에 상담차 방문한다
아무렇게나 달래보려고 한 말에 모브는 뜻 밖의 위로를 얻게되고
레이겐 사무실의 알바생으로 일하게 된다
이 애니에서 제일 판타지라고 생각되는게 레이겐이었다
시게오가 순하게 잘 자라난 것은 레이겐이 옆에서 잘 이끌어준 덕분이라고 치고,
그런 레이겐의 가르침을 받아서 힘을 가지고 심술궂게 사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가르치는 시게오까지는 이해가 간다
근데 레이겐은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학창시절에 외롭게 지내온 것 같고
가족과의 관계도 소원한 것 같은데 원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회성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에서 용케 혼자 건강한 사회성을 길렀다
아마도 레이겐과 시게오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나도 누군가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데,
가르침을 받은 사람만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도 배우는 점이 있었다
가르친다는 것이 어쨌든 두 사람간의 관계이니 만큼, 일방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내가 전하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다
레이겐이 번지르르하게 건낸 별 의미없는 위로의 말이 시게오의 눈빛을 반짝거리게 했을 때
레이겐 또한 무의식적으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가지는 책임감만큼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도 없지 않은가
이렇게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비단 시게오와 레이겐의 관계 뿐만 아니라
에쿠보, 리츠, 하나자와, 육체개조부 부원들, 손톱의 일원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메시지가 보이는 점이 참 따뜻하다
나이가 들수록 자극적인 것보다는 담백한 맛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좀비와 고어, 섹스가 지나치게 흔해진 요즘에
이런 다정한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보니까 기분이 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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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록
- 2022. 11. 4. 18:41
어이없게도 내가 처음으로 에반게리온을 접한 건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EOE)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TV판 에반게리온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서 TV판을 다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고,
당시에 유행하던 말로는 '멘붕물'이었다
그때 친했던 친구가 에반게리온에 심취해 있어서 나에게 무작정 EOE부터 보여줬던게 원흉이다
상당히 충격을 받았지만 사춘기 특유의 허세로, 이쯤이야 뭐 하나도 안 잔인하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도 EOE에서 아스카가 무참하게 공격당하는 모습, 레이가 거대한 모습은 머릿속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온갖 자극적이고 기괴한 것으로 순위를 다투는 컨텐츠가 만연한 요즘에 봐도 충격적인데
97년도에 봤으면 정말 기절초풍했을 것 같다
하여간에 최근에 극장에 가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마지막 편인 다카포를 보고 와서
다시 TV시리즈와 EOE를 보게 되었다
아마 한 4번째 보는 것 같은데, 감상문을 쓰는 건 처음이다
나에게는 우울할 때 보면 뭔가 정신적으로 정화가 되는 애니메이션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비극을 보면서 카타르시스, 즉 감정의 정화를 느꼈다는 것처럼
나도 나보다 훨씬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신지를 보면서 이상하게 정화가 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기분이다
1. 연출
사실 내가 에반게리온을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는데는 메시지나 철학보다는 연출이 크다
애초에 철학을 할거면 책을 쓰는 편이 낫지 왜 만화를 만들겠는가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그 매개체의 중요성이 생각보다 참 크다
정말로 중요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라도 말하는 사람이 찐따같으면 그저 찐따소리같이 느껴지는 것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출의 높은 완성도가 많은 오타쿠들이 에반게리온에 깊게 파고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TV판이 방영된 것은 1995년부터 1996년으로, 그야말로 세기말의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기대가 있던 시절이다
겉보기에는 소년만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어딘가 많이 뒤틀려있는 이 만화는
열혈 소년들의 건강한 우정과 용기를 다루는 것 보다는
사춘기의 불안하고 손대기만 하면 깨질 것 같은 위태로운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그런 심리는 독특한 연출로 나타난다
예산이 부족해서라는 후일담이 있기는 하지만,
정적인 화면에 성우의 목소리만 나오는 특유의 연출은 신지의 깨질 것 같은 예민한 심리를 극대화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비디오아트나 콜라주작품을 연상케하는 씬들도 신지의 불안한 정신을 잘 보여준다
TV판 마지막 두 회차는 복습할때마다 참 제정신으로 보기 힘들다
약간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이 만든 것 같은 에피소드 같다
현실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보여주지 않고,
끊임없이 신지의 내면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만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에는 24화까지 보고, 극장판인 EOE로 넘어가는 루트를 택했다
이렇게 하면 얼추 이야기의 아귀가 맞는 느낌이라 이렇게 보는 편을 선호한다
EOE는 말하자면 25화와 26화에서 신지가 '우메데토~'하는 동안
현실세계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주는 내용이다
지금봐도 참 황당한 구성인데 그때 처음 봤던 사람들은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EOE에서는 순조롭게 세상이 망해간다
서드임팩트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신지가 좋아했던 아스카는 만신창이가 되고 레이는 거대레이가 되고..
신지와 함께 시청자의 정신도 탈탈 털리는 내용이다
상징적인 부분이 많아서 매끄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 해석을 보면서 무작정 그걸 내 해석인양 받아들이기도 싫은 탓에
그냥 반쯤 이해하지 못한 채로 늘 보고 있다
하지만 에반게리온의 매력은 또 이해안되는 그 신비함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2. 메시지
신지는 늘 타인에게 상처를 입는다.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자꾸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멀어져간다.
고통스러운 신지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려고 한다
늘 자신에게 모질게만 구는 아버지, 자신을 거부하는 아스카, 겨우 이해했다고 생각했을 무렵 죽는 레이...
정말 정신이 나가지 않고는 못배길 환경이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배우면서 에반게리온을 떠올렸다
이방인은 처음 읽으면 이게 명작이라고??? 싶어지는 겁나 재미없고 이상한 책이다
그게 술술 이해가 잘되면 이상한 사람이다
애초에 이해가 잘 안되도록 감추는 언어를 사용해서 쓴 책이기 때문이다
보통 책들은 인물의 행동에 인과관계가 있고 독자가 화자에 몰입할 수 있도록 쓴다
그런데 이방인은 정확히 그 반대를 의도적으로 추구한다
독자가 아무리 읽어도 화자에 대해 결코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달의 뒷면같은 수수께끼의 공간을 남겨놓는 것이다
이는 부조리 철학과 연결된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눈부신 발전을 이루던 인류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설명가능하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전쟁에 휩싸인 세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쟁은 그렇게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성으로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서의 세계
타인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표정은 결코 완전히 마음을 전달할 수 없기에
타인의 존재에는 항상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알아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
마음의 벽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늘 상처입는다
에반게리온에서는 이 마음의 벽을 AT필드라고 한다
인류보완계획은 이 마음의 벽을 완전히 녹여 인류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것
더 이상 서로 오해하고 상처입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신지는 상처입더라도 나자신으로 살아보고 싶다면서
LCL용액화된 인류를 원래대로 복구시킨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의해 쉽게 상처입는 나이로는 사춘기만한 것이 없다
때로는 너무나 자괴감이 들어 이런 상처를 주는 사람들 따위 존재하지 않았으면,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어쩌면 에반게리온은 한 예민한 소년의 성장기에 대한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것에 맞서야 어른이 될 수 있다
회피하지 말고 현실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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