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록'에 해당되는 글 17

  1. 2022.12.31 영웅(2002)
  2. 2022.12.28 모브 사이코 100 3기(2022)
  3. 2022.12.26 나이브스 아웃2 글래스 어니언(2022)
  4. 2022.12.15 러브레터(1995) 1

영웅(2002)

장이머우 감독의 2002년작 <영웅>을 보았다

촌스러운 포스터에 뒷걸음질을 쳤는데 의외로 대단한 영상미와 연출로 가득한 예술영화다

기본적으로 진시황 암살을 소재로 한 무협 영화인데, 서사가 굉장히 현대적이다

이연걸이 진시황과 독대하며 자신이 어떻게 위험한 암살자들을 제거했는지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안에 장만옥과 양조위가 나오는 액자식 구성이다

같은 장면이 여러가지 버전으로 반복되고 뒤로 갈 수록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는 영화 <라쇼몽>이 떠오르기도 했음(물론 라쇼몽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끝내 알 수 없다는 점이 다르지만)

같은 장면을 다른 버전으로 보여줄 때마다 색이 달라진다

인물의 옷, 건물, 소품, 배경까지 색감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미술이 시각적 즐거움 뿐만 아니라 서사 장치가 될 수 있다는 흥미롭고 도전적인 발상이다

강렬한 치정극은 붉은 색, 슬픈 사랑 이야기는 푸른 색 이런 식으로 감정을 색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선명한 원색과 비현실적인 자연 풍광은 영화 <더 폴>이 떠오르기도 했다

두 영화 모두 색감에 죽고 못사는 사람들이라면 꼭 봐야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장쯔이와 장만옥, 양조위가 끝내주는 영상미로 애증 넘치는 무협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

사실 장쯔이 분량은 별로 크지 않고 황제랑 이연걸 분량이 더 크지만 장쯔이가 너무 아름다우니까 괜찮다...

귀여운 얼굴에 호랑이같은 형형한 눈빛은 늘 시선을 끄는 강렬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장만옥... 극중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장군의 딸로 황제에 대한 복수심으로 사는 인물인데

세상에서 그런 역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얼굴이다 

굳은 심지와 고결함이 느껴지는 얼굴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턱선 ㅠㅠ

아니 계속 얼굴 얘기만 하는데 당연히 연기 또한 훌륭하다 근데 미모에 넋을 빼앗기고 보게됨

양조위는 늘 하던 슬픈 연인 역할을 하는데 역시나 잘 어울린다

망한 사랑이 가장 어울리는 배우 1위

근데 그냥 복수하게 냅두지 천하를 위해 어쩌고 웅엥 하는 장면은 좀 짜증났음 

복수하지 않고 끝나는 결말은 스토리적으로 보면 세련되긴 했는데

문제는 마지막에 만리장성과 함께 나오는 진시황의 업적 어쩌고... 

그들이 천하를 위해 진시황을 살려두었기 때문에 진시황이 업적을 이뤘다~ 이런 촌스러운 부분이 나오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10%는 깎아먹은 느낌이다

 

이 영화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시각적인 부분이 인상적인 것 같다

남은 후기는 영화의 장면들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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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 사이코 100 3기(2022)

모브사이코 3기를 다 봤다

만화를 안봐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여기서 완결인듯 하다

이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카게야마 시게오라는 남중생이 강력한 초능력 때문에 이런저런 일에 휘말리며 성장하는 내용이다

시게오의 초능력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지만,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불안한 감정이라고 해석하면 더 와닿는 이야기가 된다

작가도 애초에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해석되도록 의도한 것 같다

판타지의 재미있는 점은 때때로 현실적인 장르보다도 현실을 더 진실되게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제 사춘기를 지나온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그때의 감정들이 기억이 나는데,

말로 설명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친구나 가족간의 갈등이 세상이 무너질 듯이 크게 느껴졌던 것이 기억이 난다

심지어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히고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남들과 달라서 잘 섞이지 못한다는 생각이 매일 나를 짓누르던 나날들

사춘기의 고민들은 사소해보이지만, 사실 겪는 본인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기분이지 않은가

모브사이코100은 한 개인이 겪는 사춘기의 널뛰는 감정을 초능력이라는 형태로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시도때도없이 폭발하고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사춘기의 감정은 시게오의 초능력과 꼭 닮았다

시게오는 3기의 끝에서, 위험하다고만 생각해서 억제하고 밀어내려고 했던 또다른 자신을 받아들인다

이때 스승 레이겐이 하는 말이 너무 좋았다

"양면성은 모두에게 있는 거야"

시게오는 자신의 능력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까봐 늘 자신의 다른 면을 억제하고 살아왔는데

레이겐이 그것이 시게오 혼자만의 고통이 아님을 알려준다

어제 읽었던 책에서 외로움에 대해 이런 내용이 있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도 자신과 똑같이 외롭다는 사실을 알게될 때 덜해진다

레이겐 또한 자신이 잘난척은 다 했지만 사실 아무 능력도 없는 거짓말쟁이라는 양면성을 고백하면서 

둘의 외로움은 공유되고, 조금 더 견딜만한 것이 된다

한쪽은 초능력을, 한쪽은 거짓말을 숨기고 싶어하지만 사실 그런 면들이 둘을 만나게 해주고 성장하게 해주었다

하... 두 캐릭터가 너무 좋다 

외로운 사람들이 만나서 성장하는 이야기에 언제쯤 안울게될까

아마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런 서사를 좋아할 것 같다

 

 

그 외에 좋았던 이야기들

 

사이코헬멧교와 브로콜리 나무 에피소드

 

사실 이 에피소드는 본 지 좀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여간 에쿠보 때문에 코끝이 찡해졌던 기억....

이말년 만화에나 나올 꼬라지를 하고 사람을 울리는 에쿠보 진짜 어이없다

에쿠보는 세계 정복의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시게오를 배신할 마음을 품지만

어이없게도 시게오가 입은 해괴망측한 원숭이 티셔츠 때문에 그를 걱정하던 마음을 다시 떠올린다

결국 시게오를 위해 에쿠보가 희생하고, 모두가 에쿠보를 잊어버리지만

시게오만은 에쿠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계속 갖고 있어서 다시 돌아오는 것까지..ㅠㅠ

시게오가 집에 돌아와서 아무 기억도 나지 않지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너무 슬펐다

 

UFO 추적 에피소드

 

뇌감전파부의 쿠라타 부장은 UFO를 찾기 위한 자신의 시도에 진전이 없고,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 상처를 받고 뇌감전파부를 해체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그냥 부실에서 과자나 까먹으려고 들어왔던 아무생각없는 부원들은 비상사태

쿠라타부장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진짜 UFO 추적에 나서는데...

쿠라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이 너무 순수하고 따뜻하다 ㅠㅠ

그리고 신년에 아무 약속도 없어서 중딩들이 부른다고 가주는 레이겐도 웃김(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임...)

보통 이런 만화에서는 결국 UFO는 못찾지만, ~중요한 건 우리들의 마음~ 대충 이런 전개로 가는데

이 범상치 않은 만화에선 정말 외계인과 접촉해버리고 심지어 한 부원은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행성에 살기까지 한다

이 부분이 엄청 본격적이고 작화도 기합이 들어가있어서 황당했음ㅋㅋㅋㅋㅋㅋ

정말 예측불가의 만화

 

 

 

마지막으로 너무 귀엽고 웃겼던 장면 ㅋㅋㅋㅋㅋㅋ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깜짝 생파에 눈 빨개진 레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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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스 아웃2 글래스 어니언(2022)

연말에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하다가 본 영화

1편을 재미있게 봤고 난 다니엘 크레이그를 좋아하므로 부담없이 켰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애거서 크리스티류의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른다

서로 절친임을 과시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복잡하기 짝이 없는 관계의 상류층 친구들,

오래간만에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벌어지는 밀실 살인 그리고 탐정의 등장

고전적인 형식이지만 코로나부터, 환경문제, 일론 머스크같은 또라이 재벌, 여성인권문제 등 각종 트렌디한 사회문제를 다룬다

물론 고발이 아주 진지한 것은 아니지만, 때깔 예쁜 오락영화에서 PC함을 숨쉬듯이 즐길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1편에서도 라틴계 이민자 여성 주인공이 가식적인 백인들의 음모로부터 자기자신을 지켜내고 재산을 물려받는 모습이 참 통쾌했는데

2편에서는 더 확실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유색인종 여성의 성과를 훔쳐가 자신의 업적으로 삼는 멍청한 백인 남성을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하는데

개인적으로 할리우드에서 재수없는 연기를 가장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역으로는 자넬 모네가 등장한다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고 마스크도 매력적이라 충격적이었다 

귀여움과 카리스마가 한 사람 안에 있을 수 있는 거임? 앞으로의 연기도 기대가 됐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다니엘 크레이그는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 상황에서 지루해하는 탐정 브누아 블랑을 연기한다

007에서의 진지하고 능글맞은 모습과는 정반대로 어쩐지 허술하고 남다른 패션철학을 가진 탐정으로 분한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다부진 마초처럼 생겼는데 왜 이렇게 알록달록한 꼬까옷이 잘어울리는거야..!

브누아 블랑 캐릭터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매력을 200% 표현하는 것과는 별개로

1편에서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문제를 결국 백인 남성이 도와 해결한다는 점이 시혜적으로 느껴졌는데

이번 글래스 어니언에서는 브누아 블랑이 동성 연인과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그 또한 소수자라는 걸 보여준다

1편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휴 그랜트를 다니엘 크레이그 남친으로 등장시키는 일석이조의 연출!

 

영화는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 이전의 전반부와 드러난 후의 후반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재수없는 재벌 마일즈 브론(일론 머스크를 비꼰 것 같다)이 보여주는 호화로운 세계에 홀렸다가

후반부에선 그 세계가 모두 가식과 부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고발된다

특히 위스키라는 캐릭터는 남성 인권 유튜버의 여자친구로, 모두 존재를 무시하는 섹시한 아이캔디 쯤으로 등장하는데

후반부에서 그의 사연이 나오며 입체적인 캐릭터로 변모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엄청나게 진취적이고 영화계의 한획을 긋는 작품이냐 하면 아니지만, 

가진 자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매력적인 오락 영화를 만든 느낌

게다가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회 풍자가 들어가 있으니,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준수한 오락 영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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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1995)

이와이 슌지 감독의 1995년작 러브레터를 보았다

제목만 보고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지고지순하게 사랑을 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제는 다르다고 느꼈다

로맨스 장르를 기대하고 영화를 보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러브레터는 오히려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기 성장을 이루는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물론 그 극복의 과정에는 사랑 이야기도 나오지만, 사랑이 메인이 아님은 분명하다

마치 러브레터인줄 알고 받았지만 아니었던 편지처럼, 이 영화도 겉보기에는 로맨스같지만 실은 성장영화다

 

히로코는 3년전 죽은 연인 이츠키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의 기일에 펼쳐본 졸업 앨범에서 히로코는 이츠키의 옛 주소를 찾고, 

무슨 마음인지 그 주소로 편지를 한 장 부친다

편지는 눈덮힌 오타루의 한 고즈넉한 주택에 도착해서 후지이 이츠키의 손에 들어온다

죽은 연인인 이츠키(남)와는 다른 이츠키(여)다

동명이인이라는 소재와 1인 2역이라는 설정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헷갈려서 열심히 추리하는 재미가 있었다

방 인테리어 너무 예쁨...

이츠키(여)는 다짜고짜 잘 지내냐는 내용이 적혀있는 영문모를 편지가

자신에게 잘못 온 것임을 알고있지만, 장난삼아 답장을 보낸다

잘 지내지만 감기에 걸려있다고

이츠키는 좀처럼 낫지 않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있다

그의 아버지는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그러니 감기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영화에서 아버지와의 상징적인 연결점이 있는 듯 하다

그 연결점이 어떤 것인지는 각자 다른 짐작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기를 나으려면 병원에 가야하는데, 이츠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소인 병원이 너무나 무섭다

감기가 나을 턱이 없다

 

이츠키의 편지에, 히로코는 당연히 깜짝 놀란다

답장을 바라지 않고 쓴 편지에 답장이라니! 

뭔가 수상하지만 히로코는 죽은 연인의 일이라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어쩌면 천국에서 편지가 온 걸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렇게 히로코와 이츠키는 몇 차례 편지를 주고 받는다

편지는 늘 "하이케 ....사마"라는 말로 시작한다

한국어로는 "....님께"라는 뜻인데, 또랑또랑한 말투로 하이케라고 또박또박 읽는 느낌이 명랑하다

그러다가 히로코의 현재 연인 미만 친구 이상쯤 되는 남자가 편지가 오는 오타루에 가보자고 한다

후지이 이츠키의 정체를 밝혀야만 한다면서!

이 남자는 히로코를 사랑하는데, 히로코가 이츠키(남)를 잊지 못해서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는데 항상 안달이 나있다

말투가 뭔가 거칠고 히로코한테 자꾸 이거하자 저거하자 주장해서 왠지 재수없다

 

히로코와 남자는 오타루에 있는 정체불명의 이츠키를 찾으러 가는데, 결국 마주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히로코가 이츠키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서, 둘은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풀게되고 

이츠키는 히로코에게 자신이 이츠키(남)의 중학교 동창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해준다

 

이츠키(여)와 이츠키(남)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사귀라며 아이들이 놀려대는 탓에 친해질 겨를도 없이

서로 불편함만 가득한 사이였다

둘은 도서관을 관리하는 일을 했는데, 이때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책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어렵고 재미없는 책의 대출카드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이 취미인 이츠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역시 그의 취미의 대상이 된다

책에서 마르셀은 홍차에 마들렌을 적셔 먹다가, 그 맛을 느꼈던 아득한 과거의 기억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감각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하는데,

이 영화에서 프루스트 효과를 유발하는 것은 바로 영화 제목이기도 한 러브레터다

편지 한 장으로 잊고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서서히 되찾는 것이다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기억'의 역할이다

보통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영화는 기억을 들춰내고 상처에 다시 맞서게 한다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상처를 품고 있는 히로코는 그가 죽은 산에 가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친다

히로코는 늘 이츠키를 마주하기를 두려워했다

그의 죽음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이, 기일에도 끝까지 남는 대신 집에 돌아오고

오타루에서 이츠키를 만나기 직전에 자신은 하지 못할 것 같다며 망설인다

그만큼 히로코에게 이츠키(남)는 너무나 큰 존재라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어렵게 느끼는 듯하다

마침내 이츠키가 죽은 산에 가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설산에 안부를 묻는 히로코

그의 모습은 깊은 슬픔을 담고 있으면서도 후련해보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감기로 아버지를 잃은 이츠키의 가족들은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보인다

할아버지는 조금 정신이 오락가락한 것으로, 어머니는 옛 집을 버리고 새 아파트로 이사가려는 것으로, 이츠키에게는 끝나지 않는 감기로 나타난다

어느 폭설이 내리는 날, 이츠키는 고열 때문에 쓰러져 버린다

눈 때문에 구급차는 최소 한시간이 걸린다

아버지때와 너무도 똑같은 상황에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은 지경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도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체되어 아버지는 결국 살아나지 못했다

'이번에도 똑같으면 어떡하지?'

미칠 것 같은 불안감이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엄습한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손녀를 업고 병원까지 뛰어가겠다고 우긴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설득을 하면서

하지만 어머니는 이번에는 딸을 잃을까봐 할아버지에 반대한다

치열한 갈등 끝에 결국 어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설득되어 병원까지 40분의 달림박질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긴박한 장면이다

할아버지가 지쳐서 눈밭에 대자로 쓰러져버리는 장면은 코믹하면서도 너무 슬프다

이번에는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

그것은 아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심지어는 아들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에 기인한 것일테다

결국 할아버지의 초인적인 집념으로 병원에 40분도 아닌 38분만에 도착한 일행

이번에는 이츠키를 살렸다는 안도감에 가족 모두가 긴장이 풀린다

또 다른 죽음의 목전에서 다 함께 이츠키를 살려낸 가족들은 비로소 아버지 죽음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 제목은 영화의 주요 테마를 관통하는 셈이다

고통스러워서 차마 마주하지 못했던 과거를 다시 마주한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따가운 소독약을 바르고 살을 꿰어 봉합해야한다

아픈 과정이지만 하지 않으면 상처가 서서히 곪아버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과거는 잊고 새로운 삶을 살자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러브레터의 작동기제는 아플지라도 잊고있던 과거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성장하는 것이다

과거의 나를 용서하지 않으면 현재의 나를 사랑할 수 없다

두 여자의 성장통에 함께 울고 또 웃는 영화였다

 

숏컷병에
걸릴 것 같다
방이...너무예쁨...
방이 너무 예쁨2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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