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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7 패자의 생명사(2022)
- 2023.03.03 증언들(2019) 1
- 2023.02.07 아이들 파는 나라(2019)
- 2023.02.02 시녀 이야기(1985)
- 패자의 생명사(2022)
- 독서록
- 2023. 3. 7. 17:20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패자의 생명사>를 읽었다
내가 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역시나 문학이지만 생명과학 책도 가끔 읽으면 재밌다
살다보면 익숙한 관점으로만 생각하다 보니까 머리가 굳는 기분인데, 생명과학이야말로 가장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기본적으로 생명과학은 인간편의중심적인 오류를 지적하고 다른 생명의 관점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나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자의식 과잉'을 치료하고 건강한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생각을 환기해주는 역할이다
<패자의 생명사>는 지구 생물들의 진화과정을 쉽게 풀어쓴 책인데, 다만 관점에 있어서 차별점을 둔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꼭 더 강하고 큰 생명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책에서 나온 내용으로 예를 들자면, 포유류는 공룡들이 전성기를 누릴 때 작은 몸집으로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겨우 살아남은 생물이었다
반면 공룡들은 끊임없는 크기 경쟁을 통해 거대한 몸집을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 지상을 지배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운석충돌에 의해 척박한 환경이 된 지구에서 거대한 공룡들은 필요한 열량을 채우기 힘들어 멸종하고 말았다
몸집이 작은 포유류는 살아남는데 많은 먹이가 필요하지 않았다
포유류는 살아남아 공룡이 모두 멸종한 지상에서 번성했다
저자는 이런 것을 두고 '패자의 승리'라고 말하는데, 내 생각에는 그냥 환경에 적응하는 쪽이 살아남는다는게 정확한 말이지 않을까 싶다
그치만 '패자의 승리' 쪽이 좀 더 드라마틱한 맛이 있으니까 그렇게 쓴 이유도 이해가 간다
저자가 식물학자라서 그런지 동물 이야기보단 식물 이야기가 디테일이 있고 재밌다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을 하나 꼽자면, 풀이 나무보다 더 진화된 형태라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나무가 훨씬 크고 복잡하게 생겼으니 나무가 후에 진화했을 것 같은데 사실은 반대다
나무는 위로 쑥쑥 자라서 초식동물의 피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만약 영양분과 물이 충분하지 않은 혹독한 환경에 있다면, 성장속도가 몹시 느려서 성장하기도 전에 동물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
몇십년에서 몇천년까지도 살아가는 나무와 달리 풀은 한해살이나 여러해살이 정도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짧은 삶을 살아가는 풀은 하찮아보인다
하지만 풀은 혹독한 계절을 대비하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쓰지 않는 대신, 빠른 사이클로 번식을 한다
개별 개체의 수명은 짧지만 종 전체는 몇천년이고 가는 셈이다
생존을 위해서 오히려 수명을 줄이고 구조를 단순화 시켰다는게 재밌다
풀 중에서 특히 벼같은 종류는 생장점이 줄기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에 있다고 한다
생장점이 위쪽에 있는 경우 식물은 끊임없이 새로운 줄기를 뻗어나가며 키가 클 수 있지만 동시에 초식동물에게 먹혀 생장점이 파괴될 경우에는 더이상 새롭게 자라날 수 없어 죽게된다
그야말로 하나를 내주고 하나를 얻어가는 셈이다
벼같은 경우는 생장점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키가 크는데는 제한이 있지만 초식동물에게 먹혀도 아래의 생장점만 살아있으면 끊임없이 재생이 가능하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생존은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이 한다는 것이었다
꼭 최강의 동물이나 식물이 되는 것이 방법이 아니라, 자신만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치 온앤오프 노래 가사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생물들처럼 온앤오프도 1군 탑 아이돌은 아닐지라도 자신들만의 색깔로 대체불가능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보면 또 기회가 오는거다 별볼일없는 소동물이었던 포유류가 지상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 것처럼
솔직히 "자연에는 모든 답이 있다"라는 식의 얘기는 별로 안좋아한다
그건 "인간이 우월하다" 만큼이나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이 책도 좀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서, 메시지가 그다지 세련되지는 않다
글의 호흡도 너무 짧다 조금 집중하려고 하면 어느새 끝나버린다
과학서적은 저자가 내놓는 이론을 근거 체크하면서 치열하게 머릿속으로 다투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런 맛은 하나도 없다...
아무래도 책의 가독성을 위해서 근거의 디테일을 와장창 잘라먹은 것 같다
물론 짧고 쉽게 읽히며, 메시지도 단순하다는 점을 오히려 매력으로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같다
명작이라고 하긴 뭐한 책이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관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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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을 읽었다
<증언들>은 <시녀이야기>의 후속작으로, 전작에서는 시녀 오브프레드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아주머니' 계급을 전면에 등장시켜 독자들에게 길리어드라는 국가의 속사정을 조금 더 깊이 보여준다
또한 전작에서 여성 혐오의 답답한 현실을 디스토피아 세계관으로 풀어냈다면,
<증언들>은 제도화된 여성 혐오를 넘어서기 위한 여성들의 연대를 벅차게 보여준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전작의 고구마를 뛰어넘는 사이다가 있다고나 할까
<시녀이야기>가 쓰여진 1985년의 사회적 분위기와는 확실히 많이 달라진 세태의 반영이 있는 것 같다
절망적 전망 대신 희망과 연대에 대한 여성들의 욕구가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사라졌던 낙태죄가 다시 부활하는 등 오히려 '길리어드'처럼 퇴보한 모습도 있으니 아이러니 하다
작품은 세 여성의 증언을 담고 있다
전작에서 다른 여성들을 탄압하는 철혈의 '아주머니' 계급으로 등장하는 리디아 아주머니,
사령관의 딸로 태어났지만 '아내'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아주머니가 된 아그네스,
캐나다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열여섯 생일에 자신이 알던 세상이 뒤바뀌게 되는 데이지
같은 여성을 박해하는 '나쁜 년'이었던 리디아 아주머니가 반전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 가장 재밌었다
<시녀이야기>에서는 여성들간의 분열과 시기, 질투가 꽤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아내는 남편과 대신 성행위를 하는 시녀를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아주머니들은 다른 모든 여성을 잔혹하게 탄압한다
물론 그러한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도록 여성들의 소통을 금지하고 서로를 감시하는 분위기 또한 잘 묘사되어 있어 납득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성 중심 사회가 세뇌 수준으로 질투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이미 만들고 있는데 페미니즘 소설에서까지 이런 묘사를 봐야할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었다
내 생각에는 작가도 후에 그러한 아쉬움을 가지고 <증언들>을 써내려 갔던 것 같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겉으로는 남성권력에 기생하며 권세를 누리는 중년여성이지만, 사실은 지하 여성 단체인 메이데이와 몰래 내통하는 스파이의 역할도 하고 있다
무간도 같은 언더커버물인 셈이다
길리어드를 설립한 사령관 남성들은 공포와 무력만으로는 여성들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부 여성들을 '아주머니'로 포섭하여 여성들을 내면에서부터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여러가지 규율을 만들도록 한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길리어드 건국 이전에는 판사로 일했지만, 자신앞에 죽음 혹은 사령관들과의 협력만이 놓이자 협력을 선택한 인물이다
일단 첫발을 내디디면, 그 결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다음 발을 내딛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런 시대에는 방향이 딱 두 개밖에 없다. 위로 올라가거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그는 긴 세월동안 길리어드에 충성하며 물밑에서 온갖 더러운 일에 손을 대며 국가의 존속에 기여한다
사령관들의 더러운 뒷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수집하며 길리어드의 종말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채 말이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자신이 저질러온 악행들에 대해 변호하지 않고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아그네스가 증언하는 사령관 딸의 삶은 초반에는 마치 행복한 삶처럼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순종의 미덕을 주입당한 소녀들은 자신의 삶에 꽤 만족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그들은 하녀를 거느리고 보살핌을 받으며 학교에도 다닌다
하지만 평범한 듯이 증언하는 일상 곳곳에는 기괴함이 엿보인다
여성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집을 지키고 있는 '천사'들, 여성에게 글이나 학문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 학교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고 죽음을 맞이한 시녀
결정적으로 어린나이에 늙은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정해지자 아그네스는 참을 수 없어진다
전작에서 특권 계층으로 그려졌던 '아내' 계급 또한 말도 안되는 조혼풍습과 순종의 의무로 억압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봉건 사회에서
아그네스는 결국 결혼시장에서 이탈하여 아주머니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아주머니들이 생활하는 아르두아 홀에서 리디아 아주머니와 데이지를 만나게 된다
데이지는 주인공스러운 설정을 다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길리어드에서 십몇년전에 아기를 데리고 탈출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아기 니콜
아기 니콜은 길리어드 반대자들 사이에서는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고
길리어드 측에서는 납치당한 불행한 아기로, 아기 성자 취급이다
길리어드 요원들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이 아기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데이지의 열여섯번째 생일에 부모님이 상당히 의문스러운 사고로 사망하고
그는 자신의 세계가 송두리채 바뀌는 한 마디를 듣는다 "네가 아기 니콜이란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넌 마법사란다 해리"를 듣는 장면과 비슷하달까
물론 해리는 학대로 얼룩진 프리벳가에서 벗어나 마법학교에서 멋진 모험을 시작하지만
데이지는 자신의 양부모를 잃고 생명을 위협받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모험을 떠난다는 서사 구조는 전형적인 것이지만 아는 맛이 더 맛있다고 상당히 재미있다
이렇게 해서 작가는 전작에서 독자가 궁금해했던 설정들에 대한 설명을 다 내놓는다
아주머니 계급과 아내 계급, 지하여성조직 메이데이와 길리어드 국외의 상황까지
초반에는 서로 상관없어보이던 세 인물의 이야기가 얽히고 섥히며 종장을 향해 달려간다
보통 메시지가 지나치게 선명해지면 이야기가 촌스럽고 유치해지는데, <증언들>에는 해당이 안되는 이야기다
세련되게 잘 닦인 서사와 정말 길리어드라는 나라가 실존하지 않는지 착각하게 만드는 생생한 캐릭터들
글빨은 또 얼마나 좋은지 후반부에서는 눈물을 끊임없이 닦으며 읽었다
600페이지짜리를 쉼없이 읽도록 만드는 작가의 저력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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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파는 나라(2019)
- 독서록
- 2023. 2. 7. 15:43
책은 한국 국제입양의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어릴 적 TV에서 한번도 만나본적 없는 새 부모와 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입양을 떠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자주 보았다
매체에서는 몹시 감상적이고 슬픈 톤으로 그 장면을 보여주었고, 나 또한 그 슬픈 장면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보아왔던 그 장면이 얼마나 기괴한가 생각했다
한국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대리 입양 제도'를 실시했던 국가로, 양부모가 될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아이를 접견하지 않고도 '해외 직구'를 하듯이 아이를 쇼핑할 수 있는 나라였다
'아동 복지회'라는 이름을 단 사기관들은 입양 브로커 짓으로 막대한 수수료를 해먹고
1세계 백인들은 자신의 신앙심과 자비로움을 전시하기 위해 한국 고아들을 마구 사들였고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가 해야할 일을 사기관에 떠넘겨버리고 피해자가 발생하든 말든 방관했다
거의 인신매매에 가까운 사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체에서는 그것을 어쩔 수 없는 비극인양 비추어왔다
이런 사실이 너무나 기가 막혔다
책에서는 세계 최대 아동 수출국인 대한민국의 국제입양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으며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일임을 수많은 근거를 가지고 꼬집는다
한국의 국제입양은 결코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고아를 국내에서 감당하지 못해 입양 보낸 것이라면, 상식적으로 고아가 가장 많을 한국 전쟁 직후에 국제 입양의 규모가 가장 커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이 올림픽을 열 정도로 급성장을 하던 70-80년대에 가장 큰 규모의 아동수출이 일어났다
책은 국제 입양의 역사를 집요하게 파헤치는데, 첫 시작은 정말인지 끔찍하다
한국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의 존재를 지우고 단일민족이라는 망상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 바로 국제 입양의 시작이었다
어이가 없는게 국가가 포주노릇해서 기지촌 성매매 만들었으면서 그 결과는 국가가 책임을 안지는 거다
하여튼 혼혈아들을 죄다 치워버리기 위해 시작된 국제 입양은, 70년대 들어서 한국과 미국 기독교 가정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잘나가는 사업이 되었다
정말 부모가 없는 '고아'만 수출하면 물량이 부족하니까 이 단체들은 경제적 여력이 안돼서 잠시 기관에 맡겨놓은 아이, 잃어버린 아이(부모 모두 살아계시고 자기 입으로 부모 이름과 주소를 말해주는데도), 심지어는 유괴된 아이까지 팔아넘긴다
상식적으로 친부모가 살아 있으면 이들이 양육을 하고, 정말 여력이 안되어 부모가 포기할 경우에 국내입양을 먼저 시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국내입양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국제입양을 불과 몇개월만에 갔다고 한다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상황인 건지 ㅋㅋㅋㅋㅋㅋㅋ 이걸 국가가 방임했다는게 진짜 이해가 안된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국제 입양이 꼭 '부자 나라에서 새 기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다른 나라로 팔려나가 백인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홀로 동양인으로 자라는데
이들은 정체성의 큰 혼란과 인종차별을 숨쉬듯이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양부모에게는 끊임없이 감사를 강요받는다
아이들이 원해서 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책에 실려있는 국제입양인들과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왔는지 여실히 느껴진다
또한 통계도 국제입양인들의 고통을 보여준다
비입양인에 비해 자살율이나, 우울증 유병율은 훨씬 높은 수치로 나타나고, 취업률은 낮게 나타난다고 한다
마치 바다에 살던 고래를 잡아서 전혀 다른 환경인 수족관에 넣어놓고 여기선 안전하고 먹이도 충분하니 오히려 고래가 고마워할 일이다 라고 하는 인간을 보는 것 같다
국제 입양에 대해서 막연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설사 좋은 의도로 한 입양이라도
입양인 본인이 겪는 경험은 꽤 고통스럽겠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개도국으로 여겨지는 나라들도 국제입양이 인신매매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금지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국이 경제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손색없이 성숙한 나라이기 위해서는 아동 수출 문제를 '그땐 그랬지' 식으로 넘기는 대신에 적극적인 해결과 반성을 해야할 것 같다
한국 정부의 묵인 아래 적절한 절차 없이 국제 입양된 아동들이 해당 국가에서 제대로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하고 추방된 사례가 책에서 나오는데,
이런 사례의 대다수가 한국출신 입양인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추방입양인들은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큰 경제적 곤란을 겪으며, 심지어는 자살로 몰리고 있다
국가에 의한 가해이고 살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열심히 팔아치우고 그들이 학대당하든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하든 신경도 안썼으면서
이제는 여자들 보고 아이를 왜 안낳냐고 호통을 치는 나라...
정말인지 저출산으로 망해도 할 말 없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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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녀 이야기(1985)
- 독서록
- 2023. 2. 2. 11:36
엄청 재밌게 읽은 소설인데 독서록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겠음...
생각나는게 지나치게 많아서 뭐부터 쓸지 고민이 된다
몇번이나 쓰려고 했는데 쓰고나서 별로라 계속 지우게 됨
고민 끝에 의식의 흐름대로 적당히 적어내려가본다
하여튼 배경은 길리아드라는 가상의 국가인데, 1990년대쯤에 미국이 혼란속에 무너지고 보수 기독교를 표방하는 단체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세웠다는 설정
이 국가는 기존의 출생률 감소가 여성들의 방종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권리를 근대 이전보다 못한 수준으로 만든다
주인공인 이름 모를 '시녀'는 길리아드가 건국되기 이전의 삶을 밤마다 회상하는데 이게 정말 공포스러움
직장에 다니던 주인공이 총든 병사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직장 밖으로 쫓겨나며,
모든 여성 명의의 신용카드와 계좌는 정지되고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재산이 종속된다
이 부분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디테일은 주인공의 남편의 반응이다
그이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거야. 그이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아. 어쩌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지도 몰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것이 아니야. 이젠, 내가 그의 것이 되어 버린 거야
절망과 공포에 빠진 주인공에게 '우리에게 아직 서로가 있잖아'라고 위로하는 남편을 보고 주인공이 생각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부당한 일에 대해 주변 남성들에게 말했을 때의 반응이랑 똑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남일 보는 것처럼 냉담하고 전혀 공감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반응
남성들의 여성의 피해에 대한 공감불능은 정말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존재했구나 싶다
주인공이 겪는 폭력은 신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원래의 이름을 빼앗기고 자신이 종속된 남성의 이름을 딴 이름을 부여받는 것
세상의 모든 소식과 차단되고 책 읽기를 엄격히 금지 당하는 것
욕망이 거세되고 정신적으로 점점 세뇌되어 스스로도 차라리 이 시스템에 굴복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빼앗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폭력이며 억압인지 작가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모든 말과 행동거지를 감시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외부로 표출할 방법이 없다
글 또한 금지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도 할 수 없다
시녀들은 언제나 신실한 이야기만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서로가 체제에 완전히 세뇌된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 사이의 연대는 금지되어있고, '시녀'와 '아내', '하녀', '아주머니'등 여성이 기능별로 계급화 되어 있어 서로를 미워할 수 밖에 없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져있다
그럼에도 시녀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은밀한 암시를 한다
"아름다운 오월의 하루(May day)로군요."
메이데이는 조난신호로 쓰이는 말이다 불어 M'aidez(도와주세요)에서 왔다
주인공은 이 말을 들었을 때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책은 마치 청교도처럼 금욕적이고 억눌린 시녀의 삶을 그려내며 그 사이에 억누를 수 없는 욕망과 전복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사실 책은 헝거게임처럼 시원한 혁명을 하는 그런 류의 책은 아니고
조지오웰의 <1984>처럼 체제 속의 개인이 뭔가 해보려다가 망하는 답답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주인공 내면의 저항과 욕망이 너무나 폭발적인 느낌을 준다
"제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고 싶으신 거군요."
내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은 질문이 아니라 직설적인 지적처럼 느껴졌다. 단호하고 의도가 분명한 진술. 내 삶이 견딜 만하다면, 그럼 그들이 저지르는 짓거리들이 다 정당화된다.
주인공은 자신이 종속된 남성에게 일종의 총애를 받으며 은밀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들에서는 꼭 억압된 처지의 여성을 동정하며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구원해주려는 낭만적인 남자주인공이 나온다
그런 구원이 기만적인 짓거리이며, 남성의 판타지일 뿐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소재와 메시지도 강렬하지만 작가가 글을 정말 매력적으로 써서 빨려들어가듯이 읽었던 책이다
가장 전복적이고 파격적인 감정들이, 얼굴을 가리는 베일까지 써야하는 주인공의 내면에서 폭발할 때 짜릿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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