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1959)

짧은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집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 읽었다

친구가 불문학중에 읽어볼만하다고 추천해서 읽었는데

우선 마음에 드는 점은 굉장히 재미있다는 점

 

자신을 자꾸 기다리게만 하는 불성실한 연인 로제(남자다)와의

지겨운 관계에 염증을 느끼는 폴(여자다)에게 어느 날 젊고 눈에 띌 정도로 잘생긴 남자 시몽이 접근한다

폴에게 홀딱 빠져 구애하는 시몽에게 폴은 무관심한 척 하지만, 

사실은 그가 주는 맹목적인 숭배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읽으면서 어! 이거 한국 드라마에서 맨날 하는 얘기잖아!! 라고 생각했다

폴과 로제, 그리고 시몽의 삼각관계가 긴장감 가득하게 펼쳐진다

그야말로 똥차가고 벤츠오는 여성향 연애물같은 내용인데, 

후반부의 전개는 한국 드라마와는 조금 달라지긴 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통속소설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있다는 말을 하는데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재밌어서 좋다

자칭 순수문학이라는 것들은 도통 재미가 없는 경우가 좀 많아야 말이지

 

물론 내가 마음에 들어한 그 '통속소설'스러움만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을리는 없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런 흔하디 흔한 연애담을 극도로 섬세하게 감정 묘사를 통해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

쉽게 포착하지 못하는 사소하고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잡아내어

써내려가는 그 재주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폴이 시몽에게 강하게 끌리면서도 스스로를 다잡으며 애써 냉정한 척하는 장면

화가 날 상황이 아닌데 이상하게 화가 나는 때, 그러나 그 화를 숨겨야 하는 때

분명 나 또한 어떤 상황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데,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맞아 나도 그랬었지 하고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캐치하지 못하는 이 작은 감정조각들을 왜곡없이 재현한다

이런 작가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해상도로 사람들의 관계와 자신의 내면 감정을 관찰할 수 있는 것 같다

감정의 색채를 섬세하게 보는 작가들에 비하면 나는 색맹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강의 감정 묘사는 주인공 폴의 모순적인 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좋으면서 싫은 그런 마음 있지 않은가

기쁘지만 어딘가는 불안하고, 어떤 사람을 가지고 나니까 이제 지겹게 느껴지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 요상한 마음들을 적나라하게 풀어놓는데

그런 글을 읽으니까 기분이 편안해졌다

어떤 예능 프로인가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인간에게 때때로 어두운 내용의 책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내면에 있는 어두운 부분이 이상한 것이 아님을 확인받는 일은 위로가 된다

 

책은 무척 프랑스 소설답게 끝난다

물론 책을 집은 순간부터 그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로제 이 나쁜놈

 

 

'독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의 자리(1990)  (0) 2022.11.22
불안(2011)  (0) 2022.11.16
노랜드(2022)  (0) 2022.10.31
피를 마시는 새  (0) 2022.10.25
H마트에서 울다(2021)  (0) 2022.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