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노말리(2020)
- 독서록
- 2022. 12. 20. 11:54
에르베 르 텔리어의 2020년작 <아노말리(L'anomalie)>를 읽었다
공쿠르 상을 수상한 SF소설이지만 인생의 의미에 대한 성찰 어쩌고라고 뒷표지에 써있어서
테드 창 소설처럼 차가운 이과의 언어로 머리를 띵하게 하는 감동이 퍼지는 그런 느낌을 기대했건만
그냥 저냥 읽을 만한 오락 소설 느낌이다... 여행가서 가볍게 한 권 읽기 좋을 듯
주말 아침에 보는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 나올 것 같은 현상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3월에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엄청난 난기류를 만나고 겨우 무사히 착륙한다
그런데 6월에 같은 항공기가 또 나타난 것이다
완전히 똑같은 탑승객, 흘린 음료수 자국마저 똑같다
갑작스럽게 도플갱어를 마주하게 된 사람들과 주변 인물들이 각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다
SF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풀어가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중요한 것 같다
근데 그다지 나로서는 공감가는 통찰은 아니었다
책에는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많은 탑승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나이지리아의 성소수자 뮤지션 이야기는 좀 흥미롭긴 했는데, 아무래도 당사자성이 부족해서 어디서 아프리카의 성소수자 현실이라는 기사 하나 읽고 쓴 느낌이 강했다
나머지는 사랑 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프랑스 남자가 쓴 것 같아서(맞지만) 별로였다
여자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적으로 묘사하고,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성들이 늙고 찐따같은 남자들을 자꾸 좋아한다
여성 화자의 시점으로 쓰인 챕터들은 누가봐도 '남자가 생각하는' 여자의 생각이 나타나서 위화감이 심했다
인간에 대한 관찰 역량이 전반적으로 부족한데 왜 굳이 이런 형식을 취했는지 모르겠다
'어느날 나의 도플갱어가 나타난다면?'이란 주제는 이제 문학에서 그다지 새로운 주제는 아니지 않은가
아이디어가 무난하다면 디테일로 승부를 봐야할텐데 이 책의 디테일이 뛰어난가? 잘 모르겠다
차라리 현상에 대한 과학적 해석을 제시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사실 글을 문학이 아닌 사고실험으로 활용하는 부류의 SF소설들은 별로 내 취향은 아닌데
이 작가의 경우에는 본인의 장기가 그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책에서는 비행기가 두번 착륙한 이상현상이 시뮬레이션 설의 근거라고 말한다
시뮬레이션 이론은 지구가 인류의 먼 후손 또는 다른 지적 생명체에 의해 시뮬레이션 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한다
흥미로웠는데 책에서 그 이론에 대해서 별로 근거를 많이 제시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 쪽으로 끝장나게 파봤으면 좀 더 재밌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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