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1985)
엄청 재밌게 읽은 소설인데 독서록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겠음...
생각나는게 지나치게 많아서 뭐부터 쓸지 고민이 된다
몇번이나 쓰려고 했는데 쓰고나서 별로라 계속 지우게 됨
고민 끝에 의식의 흐름대로 적당히 적어내려가본다
하여튼 배경은 길리아드라는 가상의 국가인데, 1990년대쯤에 미국이 혼란속에 무너지고 보수 기독교를 표방하는 단체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세웠다는 설정
이 국가는 기존의 출생률 감소가 여성들의 방종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권리를 근대 이전보다 못한 수준으로 만든다
주인공인 이름 모를 '시녀'는 길리아드가 건국되기 이전의 삶을 밤마다 회상하는데 이게 정말 공포스러움
직장에 다니던 주인공이 총든 병사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직장 밖으로 쫓겨나며,
모든 여성 명의의 신용카드와 계좌는 정지되고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재산이 종속된다
이 부분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디테일은 주인공의 남편의 반응이다
그이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거야. 그이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아. 어쩌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지도 몰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것이 아니야. 이젠, 내가 그의 것이 되어 버린 거야
절망과 공포에 빠진 주인공에게 '우리에게 아직 서로가 있잖아'라고 위로하는 남편을 보고 주인공이 생각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부당한 일에 대해 주변 남성들에게 말했을 때의 반응이랑 똑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남일 보는 것처럼 냉담하고 전혀 공감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반응
남성들의 여성의 피해에 대한 공감불능은 정말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존재했구나 싶다
주인공이 겪는 폭력은 신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원래의 이름을 빼앗기고 자신이 종속된 남성의 이름을 딴 이름을 부여받는 것
세상의 모든 소식과 차단되고 책 읽기를 엄격히 금지 당하는 것
욕망이 거세되고 정신적으로 점점 세뇌되어 스스로도 차라리 이 시스템에 굴복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빼앗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폭력이며 억압인지 작가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모든 말과 행동거지를 감시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외부로 표출할 방법이 없다
글 또한 금지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도 할 수 없다
시녀들은 언제나 신실한 이야기만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서로가 체제에 완전히 세뇌된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 사이의 연대는 금지되어있고, '시녀'와 '아내', '하녀', '아주머니'등 여성이 기능별로 계급화 되어 있어 서로를 미워할 수 밖에 없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져있다
그럼에도 시녀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은밀한 암시를 한다
"아름다운 오월의 하루(May day)로군요."
메이데이는 조난신호로 쓰이는 말이다 불어 M'aidez(도와주세요)에서 왔다
주인공은 이 말을 들었을 때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책은 마치 청교도처럼 금욕적이고 억눌린 시녀의 삶을 그려내며 그 사이에 억누를 수 없는 욕망과 전복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사실 책은 헝거게임처럼 시원한 혁명을 하는 그런 류의 책은 아니고
조지오웰의 <1984>처럼 체제 속의 개인이 뭔가 해보려다가 망하는 답답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주인공 내면의 저항과 욕망이 너무나 폭발적인 느낌을 준다
"제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고 싶으신 거군요."
내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은 질문이 아니라 직설적인 지적처럼 느껴졌다. 단호하고 의도가 분명한 진술. 내 삶이 견딜 만하다면, 그럼 그들이 저지르는 짓거리들이 다 정당화된다.
주인공은 자신이 종속된 남성에게 일종의 총애를 받으며 은밀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들에서는 꼭 억압된 처지의 여성을 동정하며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구원해주려는 낭만적인 남자주인공이 나온다
그런 구원이 기만적인 짓거리이며, 남성의 판타지일 뿐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소재와 메시지도 강렬하지만 작가가 글을 정말 매력적으로 써서 빨려들어가듯이 읽었던 책이다
가장 전복적이고 파격적인 감정들이, 얼굴을 가리는 베일까지 써야하는 주인공의 내면에서 폭발할 때 짜릿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