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2002)
장이머우 감독의 2002년작 <영웅>을 보았다
촌스러운 포스터에 뒷걸음질을 쳤는데 의외로 대단한 영상미와 연출로 가득한 예술영화다
기본적으로 진시황 암살을 소재로 한 무협 영화인데, 서사가 굉장히 현대적이다
이연걸이 진시황과 독대하며 자신이 어떻게 위험한 암살자들을 제거했는지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안에 장만옥과 양조위가 나오는 액자식 구성이다
같은 장면이 여러가지 버전으로 반복되고 뒤로 갈 수록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는 영화 <라쇼몽>이 떠오르기도 했음(물론 라쇼몽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끝내 알 수 없다는 점이 다르지만)
같은 장면을 다른 버전으로 보여줄 때마다 색이 달라진다
인물의 옷, 건물, 소품, 배경까지 색감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미술이 시각적 즐거움 뿐만 아니라 서사 장치가 될 수 있다는 흥미롭고 도전적인 발상이다
강렬한 치정극은 붉은 색, 슬픈 사랑 이야기는 푸른 색 이런 식으로 감정을 색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선명한 원색과 비현실적인 자연 풍광은 영화 <더 폴>이 떠오르기도 했다
두 영화 모두 색감에 죽고 못사는 사람들이라면 꼭 봐야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장쯔이와 장만옥, 양조위가 끝내주는 영상미로 애증 넘치는 무협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
사실 장쯔이 분량은 별로 크지 않고 황제랑 이연걸 분량이 더 크지만 장쯔이가 너무 아름다우니까 괜찮다...
귀여운 얼굴에 호랑이같은 형형한 눈빛은 늘 시선을 끄는 강렬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장만옥... 극중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장군의 딸로 황제에 대한 복수심으로 사는 인물인데
세상에서 그런 역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얼굴이다
굳은 심지와 고결함이 느껴지는 얼굴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턱선 ㅠㅠ
아니 계속 얼굴 얘기만 하는데 당연히 연기 또한 훌륭하다 근데 미모에 넋을 빼앗기고 보게됨
양조위는 늘 하던 슬픈 연인 역할을 하는데 역시나 잘 어울린다
망한 사랑이 가장 어울리는 배우 1위
근데 그냥 복수하게 냅두지 천하를 위해 어쩌고 웅엥 하는 장면은 좀 짜증났음
복수하지 않고 끝나는 결말은 스토리적으로 보면 세련되긴 했는데
문제는 마지막에 만리장성과 함께 나오는 진시황의 업적 어쩌고...
그들이 천하를 위해 진시황을 살려두었기 때문에 진시황이 업적을 이뤘다~ 이런 촌스러운 부분이 나오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10%는 깎아먹은 느낌이다
이 영화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시각적인 부분이 인상적인 것 같다
남은 후기는 영화의 장면들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