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제인 에어(1847)

구하구하 2022. 12. 9. 15:03

사진은 본문 내용과 상관없는 2011년작 영화 캡쳐

현실에서는 상식적이고 건전한 연애를 선호하지만 이상하게 컨텐츠의 영역에서는 빻을 수록 맛이 좋다

실제로는 충족할 수 없고, 충족되어서도 안되는 인간의 부적절한 욕망을 충족해준다

그런 불순한 마음가짐으로 얼마 전에 고전 소설 <드라큘라>를 읽었는데 슬프게도 영화에서처럼 드라큘라와 여주인공의 금단의 로맨스는 안나오고 빅토리아시대 찌질한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서만 알게 되었다....

이런 슬픔을 뒤로한채 <제인 에어>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었을 때 나에게는 아무런 불순한 의도도 욕망도 없이 단순히 지루함을 참아내겠다는 결의만이 있을 뿐이었다

대체로 고전명작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들은 그 문학적 명성과는 별개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 나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였기 때문에,

제인 에어를 읽기 시작할 때 나는 재미에 대한 기대는 접어둔 채로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갑갑한 삶의 일대기를 진지한 자세로 고찰할 다짐만이 있었다

 

아니 근데 이 책, 생각외로 잔잔함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제인 에어라는 젊은 여성이 기숙학교에서 나와 가정교사로 근무하다가 나이가 20살이나 많은 집주인과 눈이 맞아 결혼을 하기로 했는데 알고보니 집주인은 부인이 있어서 사기결혼이었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신문 기사에서 봤다면 집주인에 대한 분노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성에 대한 동정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어디에나 널려있는 통속적인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 샬럿 브론테는 이 이야기를 '처녀가 몸가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신세를 망친다'같은 교훈 대신에 제인의 예민한 심리와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서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

현대의 관점으로 살펴보면, 아니 그 당시의 기준으로도 20살이나 많은 남자한테 사기결혼을 당했는데 미쳤다고 돌아가서 용서해준다는 것이 말이 안되게 빻긴 했다

하지만 심리 변화, 성적 긴장감이 극도로 잘 표현되어 있어서, 제인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여기서 이해가 간다는 말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여성주의적으로 올바른 행위라는 것이 아니라 

제인의 행동에서 독자들이 충분한 개연성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1. 유년시절

게이트헤드장

 

제인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외숙모인 리드 부인에게 맡겨져 게이트헤드장에서 사촌들과 함께 지낸다

그곳에서 제인은 완전한 천덕꾸러기 신세로, 사촌인 존에게 맞아서 머리가 찢어져도 반항한 자기만 혼난다

제인이 게이트헤드장에서 겪는 고통은 육체 뿐 아니라 그녀의 마음에 큰 흉터를 남긴다

리드 부인은 끊임없이 제인을 거짓말쟁이에 못생기고 성질이 더럽다며 비난한다

괴롭힘은 언제나 나쁘지만, 특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야할 어린 나이에 받는  어른의 괴롭힘과 소외는 더 큰 흉을 만든다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심리의 뿌리에 깊게 자리잡고,

언제나 다른 사람 눈에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그런 행동이 성과를 낼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게 된다

그는 존에게 대든 벌로 으시시한 붉은 방에 갇혀, 극도의 긴장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유령같은 존재를 목격한다

이는 삭막하고 무정했던 게이트헤드 시절의 상징이 되어 제인의 마음 깊숙히 그림자로서 자리하고

행복한 순간마다 제인에게 '넌 행복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불안 요소가 된다

 

로우드 기숙학교

 

제인은 로우드 기숙학교라는 곳으로 보내진다

이 곳에서 제인을 기다리는 것은 엄격한 규율과 낙후된 시설, 처참한 음식이지만 적어도 제인의 마음은 편해진다

게이트우드 학교는 제인의 '들이받는' 성격이 조금 더 세련된 형태로 표출되도록 변화시킨다

들이받는다는 것은 제인이 결코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사촌 존 리드가 그녀를 피가 나도록 때렸을 때, 제인 또한 존에게 달려들어 혼쭐을 내주었고

리드 부인이 제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을 때 당신을 미워하노라고 화가 나서 소리쳤다

 

사람들이 만약 자신들을 모질고 부당하게만 대하는 자들에게 늘 친절하게 순종만 한다면 그 악한 자들은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려고 할 거야. 그들은 결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전혀 변하지 않을거고, 오히려 점점 더 나쁜 사람들이 돼갈 거야. 이유 없이 누군가 우리를 때리면 아주 세게 되받아쳐야 해.

 

부당한 일의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제인의 당당한 성품은 작품의 큰 매력요소 중 하나이다

어쨌든 제인의 이런 성격이 교정되거나 교화된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다만 헬렌이라는 친구와의 애정어린 관계와 온화한 템플 교장 선생님의 영향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헬렌은 자신을 향한 부당한 매질에 억울해하지 않는 특이한 성격이다

언제나 해탈한 듯이 모든 일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소녀에 제인은 푹 빠져 자신의 애정을 아낌없이 준다

헬렌이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일은 어린 제인에게 있어 몹시 충격적이고 슬픈 사건으로 기억된다

제인은 헬렌의 모든 인내와 침착함을 물려 받은 것처럼 그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온화하고 평온한 성격인 템플 선생님도 제인의 사회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겉으로만 길들여져 보일 뿐 제인은 여전히 꽤 저항적이고 모험심이 넘친다

얌전하고 조용한 말투로 그렇지 않은 내용의 말을 하는 숙녀로 자라난다

 

 

2. 손필드 장

첫 만남

 

제인은 편지를 부치러 마을로 나가다가 한 중년의 신사가 낙마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거칠고 무례한 태도의 이 남자는 알고보니 자기 고용주였고...

다짜고짜 알 수 없는 말을 배려없이 쏟아내는 이 남자가 제인은 이상하게 편하다

여학교에 다니면서 남자라곤 평생 별로 접해본 일도 없는 제인은 오히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잘생긴 신사였다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을 거라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의 로체스터씨와 달리 책에서 로체스터씨는 여지없는 추남으로 그려진다

 

로체스터: 내가 미남이라고 생각하오?

제인: 아니오

 

첫 만남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과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이라니... 그냥 천생연분같다

자기보다 20살 많은 못생긴 남자한테 왜 빠지는지 줄거리만 보면 이해가 안가는데 책을 보면 납득이 간다

어렸을 때 사랑받지 못하고, 기숙학교에서 8년동안 수녀같은 생활을 한 어린 여자애다

근데 모두한테 거칠고 조롱하듯이 행동하는 남자가 자기한테만 자꾸 약한 모습을 보인다?

자기만 편애하고 자꾸 틱틱대고 응석을 부린다?

이건 안넘어갈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시작부터 진 게임인 거임

특히 제인의 어린시절이 그런 남자 취향에 대해 많은 근거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의 그런 편애가 어이없는 플러팅이겠지만, 사랑이라고는 제대로 받은 적 없는 제인한테는 강한 자극이었을 것이다

특히 로체스터씨처럼 몇마디 말로 감정을 왔다갔다하게 하는 영향력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제인이 로체스터에게 끌려다니기만 하는 성격도 아니다

제인은 로체스터에게 순종적인듯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한다

 

제인과 로체스터의 성적 긴장감은 첫 대면부터 시작된다

빈정대는 로체스터의 말들을 무심하게, 그러나 재치있게 받아치는 제인을 보고 로체스터는 흥미가 생긴다

'나한테 그렇게 말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클리셰는 정말인지 유서가 깊은 것이다

제인의 모습은 로체스터를 무서워하거나 순종하기만 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좁은 인간관계만을 가져왔기에 사람을 대하는 것에 능숙하지는 않지만, 당당하고 꼿꼿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서툴면서도 고고한 면이 있는 제인의 모습은 독자가 보기에도 어딘가 귀엽게 느껴진다

 

 

화재 사건

 

또 한번 둘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은 한밤중의 화재사건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로체스터의 방에 화재가 나고, 그것을 알아챈 제인이 서둘러 로체스터에게 물을 쏟아부어 그의 생명을 살린다

우리 뇌는 공포가 주는 긴장감과 성적 끌림이 주는 긴장감을 헷갈린다고 했던가

방금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순간을 지나쳤다는 긴장, 그리고 안도감

화재를 저지른 사람의 미스터리가 제인의 머리를 혼돈스럽게 뒤섞는 가운데

제인과 로체스터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존재한다

그러한 성적 텐션을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제인이 불을 끄느라 로체스터가 물에 젖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에젖어 남성의 몸에 달라붙은 셔츠는 예로부터 성적 대상화에 줄곧 쓰였는데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놓고 독자에게 이 텐션을 퍼먹으라는 얘기다

너무 노골적이었는지 2011년판 제인 에어 영화에서는 옷이 젖는 부분을 없앴다

모든 일이 마무리 된 후, 제인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 하자 로체스터는 그를 붙잡는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있고 난 후에 자신을 홀로 버려두고 갈 수 있느냐고

본디 여자들은 강인해보이는 남자가 자신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일 때 마음이 흔들리는 법이다

아마 어릴 적 모두에게 거부받은 경험만 있던 제인은 누군가가 자신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더욱 더 마음이 요동쳤을 것이다 

애정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집착적인 사랑에 쉽게 빠져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사건 이후로 제인은 겉으로는 모르겠지만 속으로는 적어도 완전히 로체스터에게 넘어가버렸다 

 

 

잉그램 양

 

근데 로체스터 이새끼가 쓰레기인게 그런 사건이 있고 나서 멀리 떠나버린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잉그램 양이라는 아리따운 숙녀와의 결혼 이야기가 오간다나 뭐라나

그런 소식을 접한 제인의 마음은 당연히 무너져 버리고,

외모로나 신분, 교양으로 자신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을 잉그램 양을 상상하며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말들로 헷갈리게 해놓고 정작 다른 여자에게 구애 활동이라니 

로체스터 이 사람은 주접으로 하는 '유죄'가 아니라 정말 죄가 많은 나쁜 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로체스터씨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수업 중에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마음이 평탄치가 않다

제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체스터씨는 얄궂게도 잉그램 양을 포함한 여러 귀족들을 자신의 장원으로 초대하고...

심지어 그들이 어울리는 사교 자리에 제인이 반드시 참석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교양넘치는 사람들 가운데 제인은 촌스럽고 눈에 띄지 않는 가정교사의 모습이다

심지어 로체스터는 잉그램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고 있고

제인을 모욕하는 언사를 하는 잉그램을 가만히 보고만 있다

화려한 사람들 사이에서 여유롭게 어울리는 로체스터 씨를 보면서 제인은 자신의 사랑을 너무나 확실하게 깨닫는다

그러나 이루어질리 없는 사랑이다 그는 제인을 사랑하지 않기에, 잉그램이라는 미모의 숙녀와 결혼할 예정이기에

모멸감과 절망에 사로잡힌채 제인은 방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로체스터씨가 따라온다

 

"잘 지냈소?" 그가 물었다.

"잘 지냈습니다."

"왜 내 방으로 찾아와 인사하지 않은 거요?"

나는 질문을 한 당사자에게 그 질문을 되받아칠까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무 바쁘신 것 같아서요."

"나 없는 동안 뭘 하며 지냈소?"

"특별한 게 없었어요. 평상시처럼 아델을 가르쳤어요."

"그리고 전보다 훨씬 더 안색이 창백해졌군. 첫눈에 알아차리겠소. 무슨 일이 있었소?"

그가 잠시 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약간 우울해 보이기도 하는군." 그가 말했다. "무슨 일이오? 말해보시오."

"아무 일도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우울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우울하다고 장담할 수 있소. 너무 우울해서 말 몇 마디만 더 하면 당신 눈에 눈물이 맺힐 것 같은데.

(중략) 안녕히 주무시오, 나의......" 그는 말을 멈추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를 떠났다. 

 

로체스터는 잉그램 양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제인이 가장 절망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또 한번 나타나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제인의 감정은 한순간 절망에서 희망으로 치솟는 파도와 같이 움직인다

감정의 오르내림이 너무나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나는 그와 함께 한숨 쉬었다가 기대감에 또 부풀게 된다

정말인지 이런 텐션을 잘 살렸다

 

로체스터라는 인물이 이렇게 사람 헷갈리게 하는데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보니 

어리고 남자경험 없는 순수한 제인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알고 보니 잉그램양을 부른 것은 로체스터가 제인으로 하여금 질투에 빠져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게 만드려는 계획이었다

그 당시의 시점으로 보면 로맨틱한데, 지금 보면 좀 음침하고 집착이 느껴지는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2011년도 영화에는 잉그램양을 로체스터가 의도적으로 불러들였다는 내용이 빠져있어서

제인이 일방적으로 20살이나 많은 남자에게 꾀임을 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효과가 있다

하여튼 로체스터씨가 사용한 방법은 비열하지만 효과적이었고 둘은 결혼을 약속했다

 

 

3. 3층의 숨겨진 방

모든 행복이 결혼식날에 파탄나고 만다

그는 사실 3층의 숨겨진 방에 그의 미친 아내인 버사를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저택에서 일어났던 모든 심상찮은 사건들은 버사가 존재한다는 복선이었다

버사는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제인의 방에 나타나는데,

이 이미지는 그가 어릴 적 붉은 방에서 겪었던 귀신의 모습과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이 유령의 이미지는 몹시 강렬하고 의미심장하다

붉은 방의 유령은 제인이 어릴 적 겪었던 지독한 사랑의 결핍의 집약체다

그의 결핍은 로우드 학교에서의 평온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심리 깊숙히 남아 불길한 웃음소리를 내고는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제인이 로체스터에게 빠진 것은 사랑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제인의 트라우마가 보통의 여자들이라면 하지 않았을 어리석은 사랑을 시켰고

로체스터라는 이 악한에 홀딱 마음을 뺏기게 만들었다

마침내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 어린 시절 붉은 방의 유령과 명확한 연속성을 가진 이미지인 3층의 여자가 나타난다

실제 일이라면 그저 우연에 불과하겠지만 문학의 지면에서 펼쳐진 일인 이상 이는 필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나는 이런 일종의 '문학적 개연성'을 정말 좋아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논리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지만, 문학에서는 두 사건에 분명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사기결혼남 로체스터는 자신들이 결혼할 수 있다며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고

불쌍한 자신을 어떻게 떠날 수 있냐며 제인에게 되도않는 가스라이팅을 한다

그와의 신뢰가 깨졌지만 아직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제인은 그와 남아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제인은 이른 새벽 모든 짐을 챙겨 정처없이 아주 먼 곳으로 도망쳐버린다

 

 

4. 휫크로스

 

무작정 마부에게 먼 곳에 내려달라고 해서 휫크로스라는 곳에 도착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짐도 잃어버려 거지나 다름 없는 신세가 된 제인은 이리저리 정처없이 떠돌게 된다

폭풍우가 치는 어느 저녁, 제인은 아프고 지친 몸으로 한 저택의 문을 간절하게 두드린다

그곳에서 제인은 또 다른 똥차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신 존으로 마을의 교구 사제로 일하며 두 여동생과 함께 조촐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책에 따르면 그는 조각처럼 잘생긴 얼굴에 늘 차가운 눈빛을 한 사람으로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삶의 사명으로 가지고 있다 또 나이도 이십대 후반으로 젊은 편임

늙고 못생겼고 늘 열정적인 것을 넘어 느끼한 말들을 제인에게 하며, 삶을 쾌락주의적으로 살아온 로체스터와는 정반대인 셈

신 존은 제인에게 신사적으로 구는 사람이다 태도가 조금 딱딱하기는 하지만 제인에게 쉴 곳을 제공해주고 일자리도 알아봐준다

그에게 제인 역시 호감을 품고 있지만, 그것은 가족으로서의 친밀감이지 사랑의 감정은 아니다

어느날 신 존이 제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선교를 하러 인도로 떠나는데 자신의 부인으로서 곁에서 돕지 않겠느냐고

문제는 이 청혼이 아무런 사랑 없이 이루어진 청혼이라는 점이다

신 존은 제인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제인의 굳은 인내와 심지 곧은 마음이 선교사 아내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결혼을 무슨 직원 채용처럼 진행하는 신 존의 태도에 제인은 경악해서 거절한다

근데 계속 집착적으로 자기랑 결혼해달라고 조르는 도라이임

 

"우리는 반드시 결혼하게 될 겁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합니다. 다른 길은 없어요. 그리고 결혼만 하게 되면 틀림없이 제인이 보기에도 우리의 결합이 옳을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해줄 충분한 사랑이 뒤따라올 겁니다."

"저는 사랑에 대한 오라버니의 생각을 경멸해요. 오라버니가 표하시는 그 거짓 감정을 경멸한다고요."

 

제인은 무슨 팔자인지 첫 남자에 이어 두번째 남자도 가스라이팅남이다

다른 길은 없다며 자신과 함께하지 않으면 반드시 불행하게 될 거라고 구구절절 이야기 함

신 존의 말이 옳다고 느껴 넘어갈 뻔도 하지만, 사랑 없는 결합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이 남자는 제인이 로체스터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아니 근데 제인에어 유니버스에는 왜 이런 쓰레기남과 쓰레기남만 있는 거임?

남자들 상태가 완전히 모 아니면 도다 

꼭 이런 남자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도망쳐 제인!

나의 간절한 바람과 다르게 제인은 결국 로체스터를 다시 찾아가는 선택을 한다

제인에게 지금 필요한 노래는 두아 리파의 New Rules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에 목맨다고 해서 제인이 주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자들에게는 생각이라는 것이 없다고 여겨지던 시대에 자기 마음가는대로 살아가는 여성이 바로 제인이다

책은 제인을 아이처럼 취급하지 않는다

아이처럼 취급한다는 것은,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여 간섭하려고 하는 태도다

제인은 때때로 미숙함 때문에, 운명의 장난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결과를 홀로 책임지는 독립적인 인물이다

훌륭하든 나쁘든 여성의 선택을 섣불리 단죄하거나 교정하지 않고 남자의 그것처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일은

책이 쓰여졌던 당시뿐 아니라 지금도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5. 다시 손필드

 

손필드 장에 돌아와보니 로체스터씨의 고택은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

로체스터씨는 미친 아내를 구하려고 하다가 두 눈이 멀고 한쪽 손을 잃었다

과거의 위풍당당하고 오만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쓸쓸한 모습의 슬픈 남자가 있다

제인의 귀환에 로체스터는 온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해한다

그렇게 둘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산다 끝

현실로 생각하면 사실 거의 괴담이다

18살짜리 여자애가 20살 차이나는 남자한테 꼬셔져서 결혼약속했는데 알고보니 중혼 사기였고,

결국 그 남자 떠나는데 자꾸 생각나서 돌아옴 여자애는 장애가 생긴 남자를 평생 돌보면서 살게 됨

하지만 책을 보면 (좀 제인의 정신승리가 있는 것 같지만) 제인의 심리가 어느정도 이해 간다

제인은 불행한 유년시절로 인해 애정 결핍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상대로 너무 잘난 사람을 고르면 그가 떠나버릴까봐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상냥하게 대해줘도 금세 사라질까봐 두려워하고 오히려 좀 심술궂게 대하는 것을 편안하게 느낀다

그러니 제인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을 떠날 수 없는 신세가 된 로체스터씨야말로

자신을 불안하지 않게 하고 마음놓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완벽한 존재인 것이다

그가 부유하고 장애가 없던 시절보다도 말이다

비틀린 사람에게는 또 비틀린 사람이 잘 맞는 법이다 

레드벨벳의 싸이코 가사가 이들에게 딱이다

 

우린 참 별나고 이상한 사이야

서로를 부서지게

그리곤 또 껴안아